본문 바로가기

잡다한생각

나의 애교는 남편의 격려로 만들어진 것이다

점잖은 울남편의 아내노릇으로 부부모임에 동참하느라고 연휴때 나름 바빴습니다. 그리고 휴유증으로 피곤합니다.
 "사람들과 좋은 만남을 가져놓고선 휴유증이라니 무슨?"
같은 자리에 있었던 남편조차도 저의 이 휴유증이란 말뜻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저는 휴유증으로 심신이 조금 지친 상태로 체력이 바닥났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이번 연말 저녁 부부모임에서는 서로간의 이해로 술을 많이 사양할수 있었습니다. 대신에, 필수코스처럼 되어버린 2차 노래방에서 흥겨운 분위기에 취했습니다. 흥을 내야하는 자리에서는 술을 마시지 않아도 잘 적응하는 저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더구나 자주 갖는 기회가 아니기 때문에.

평상시에 저는 남편에게 애교가 아주 많은데, 모임자리라고 해서 나타나지 않는 게 아닌가 봅니다. 자제하고 있지만 잠깐씩 나타나긴 하나 봅니다. 이런 제 모습을 보는 남편의 후배들이
 "형수님 최고!"
라는 의미로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웁니다. 처음엔 쑥쓰럽게 여겼던 저도. 이젠 뻔뻔해져서 쑥쓰러워하지 않고 당당하게 고맙다고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첨부터 제가 애교스러웠던 게 아닙니다.
저는 첫인상이 차갑고 날카롭게 보인다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때문에 상대방이 다가와 말을 걸기가 쉽지않은 외모로 인해 손해보는 격으로 가만히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싸가지'(지금은 아줌마가 되어 약간 달라졌지만^^)란 오해를 받는 억울한 이미지입니다. 이후 저는 제가 먼저 말을 걸어야만 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도 제게 말을 걸어주지 않으니까요.
남자 셋에 외동딸로 자라 약간 중성같은 느낌을 풍기며 성장하여 중등시절에는 여학교였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친구가 저를 이성으로 대하는 끈적거림으로 다가와 사랑한다고 고백하여 저를 아주 난감하게 만든 적도 있었습니다.
외동딸임에도 불구하고 애교없고 살갑지도 않아, 엄마는 늘 걱정했습니다.
 "애교있는 여자가 사랑받는데..."
그렇다고 제 기억에 울친정엄마가 애교스런 여성은 아니었는데...^^ 이런 말을 자주 듣고 자란 저였으며, 인상이 바뀌지 않아 지금까지도 차가운 인상임에도 불구하고, 애교있는 아내로 사랑스럽게 보이는 것은 울남편의 공이 아주 큽니다.

여자의 애교는 태어날 때부터 타고 나는 게 아니며, 상대방에 따라 표현이 달라지는 걸 보면 여자의 애교는 자존심과 연관이 있습니다. 편한 상대가 아니면 조심스러워서 굳어질 수 밖에 없고, 그리고 상대방이 애교를 거북하게 여기면 나타낼 수 없습니다.
'곰같은 여자보다 여우같은 여자가 좋다'고 하는 남자들 대부분의 경우, 여자의 애교를 받아줄 자세가 되어있기 때문에 하는 표현이며, 여자의 애교를 천하게 여기는 남자라면 차라리 센스없는 곰같은 여자가 더 낫습니다.
센스=애교
라고 생각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상대로 인해 상처받게 된 여성의 경우, 센스고 애교고 간에 자존심의 문제로 다시는 센스에 연연해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말수가 아주 적은 울남편은, 자신이 말을 별로 하지 않기 때문에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을 좋아합니다. 결혼전 저는 할말은 하는 편이었지만 그렇다고 말이 많은 편은 아니었습니다만 울남편과 살다보니 어느새 말이 아주 많은 수다쟁이가 되었으며, 점잖은 남편의 분위기가 너무 침체된 것이 싫어서 살짝살짝 건드려 보게 된 것이 오늘날의 제가 여우가 된 계기가 된 것입니다.
우리부부는 아주 대조적입니다. 외모도. 성격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맞는 것은, 많은 사람들 앞에서 울남편의 말수적음을 제가 채우고 또한 남편은 이런 저를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어느 가정은 여자가 말이 많고 잘 웃는 것을 헤프다고 여기며 싫어하는 남편도 있다는데 제 남편은 다릅니다. 제가 잘 웃고 잘 떠드는 것을 남편이 흐뭇하게 여기다 보니, 저의 발언은 점점 늘어나고 가끔 얼굴에서 저도 모르게 남편을 향한 이쁜짓이 표출되나 봅니다.
모임에 가면 울부부가 연장자(?)가 됩니다. 순위상 저도 울남편처럼 점잖게 있어야하지만, 저는 그게 싫습니다. 남편 또한 저까지 점잔빼면 안된다면서 저를 부추킵니다. 그래서 저는 젊은 부부속에서 나이답지 않게 나대게(?) 되었고, 집안에서 남편한테 하듯이 자연스럽게 애교가 표출되기도 하나봅니다.
더구나 이런 저를 부러워하며
 "형은 재밌겠다. 형수님 애교를 우리집사람도 좀 배웠으면 좋겠다..."
진심으로 부럽다는 듯한 시선을 받습니다. 그러면 저는 제 경험을 말합니다.
 "남편이 아내의 서투른 애교를 받아줄 자세가 되어 있어야지 점점 발전하게 되는 것이지, 배운다고 되는게 아니라구^^"

아줌마들끼리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모든 남자들이 다 애교스런 여자를 좋아한다고는 할수 없더군요. 분위기랑 다른 애교는 부담스럽고, 애교자체를 싫어하는 남편도 드물지만 있고, 남편이 애교를 부리는 쪽이라면 여자의 애교가 굳이 필요하지도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경우, 여자의 애교를 잘못해석하여 헤픈 여자로 가볍게 여기려는 잘못된 사고방식을 지닌 남자도 있기에, 상황에 따라 적절하게 표현하는 센스를 익힌다는 것이 쉽지 않은 노력이기에, 애교있는 아내를 원하는 남편이라면, 일단 집안에서 아내의 모습을 인정하고 재밌게 받아주는 자세가 먼저 필요합니다.
제가 점잖은 남편앞에서 처음으로 힘들게 애교랍시고 서툴게 한번 시도했는데, 울남편의 반응이 시큰둥하거나 나무라는 태도를 취했다면 오늘날의 제 애교는 아마도 빛을 보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애교란
여자에게 있어서 자존심을 버리는 모험같은 행위이기 때문에, 절대로 상처되는 말을 하면 안됩니다. 그리고 서로의 마음과 뜻이 맞아야하므로 표현의 차이를 조율하는 지헤도 필요합니다.

남편의 격려와 호응으로 개발된(?) 제 애교가 다행스럽게도 밉상이 아닌가 봅니다. 부러운 시선을 보내며 방법을 가르쳐달라는 남편후배의 칭찬을 들으며 기분좋아지는 제 애교가 도대체 뭐 어떻길래 그러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제가 애교스런 아내로 비취게 된 데에는 저의 노력보다는, 울남편의 예찬에 힘입은 공이 있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