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라고 처음 불러주는 아이가 아들일 경우, 엄마는 그 아들을 자신처럼 착각함으로 서로를 괴롭히며 아들바라기 짝사랑이 좀 지나침을 느끼면서도 헤어나지 못함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이는 아빠라고 처음 불러주는 아이가 딸일 경우와 좀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합니다.
이상하게도 둘째아이(둘째가 보면 섭하다고 할지, 아니면 자유가 좋다고 할지 모르지만)와는 달리 첫째에게는 이성적일 수도, 객관적일 수도 없는, 주관적인 그 무엇(집착?이라고 하기에는 억울한...)이 부모를 혼란스럽게 함을 부정할 수 없음은 제 경험과 더불어 공부방을 하면서 대하게 되는 엄마들의 공통된 고민이자 행복한 고백으로 드러내는 심리임을 엿보게 됩니다.
더구나 영화에 등장한 '마더'는 어려움을 함께 나누고 의논할 대상으로 남편이 없습니다. 홀엄마로 지적장애아를 어렵사리 키우고 있으니 무엇이든 아들을 대신해주고 싶은 마음이 더 간절할 것임은 엄마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정상적인 아들이라고 해도 아들을 위해서라면 먼저 앞장서게 되는 엄마로 둔갑하여 때론 원망을 들으며 서운함을 느끼면서도 헤어나기가 쉽지 않은데... 돌보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장애를 가진 아들이 늘 염려스러워서 일을 하면서도 아들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는 마더앞에서 아들이 살인범이라는 누명을 쓰고 경찰에 잡혀가는 상황을 보았으니 작두에 손이 다침을 어찌 아픔으로 느낄 수 있겠습니까.
만약에 제가 결혼하지 않은 시선으로 이 영화를 봤다면 느낌이 당연히 달랐을 것입니다.
엄마가 아들을 대하는 사랑이 부담스러울 만큼 끈질기다고 했을 것이며, 한약사발을 들고 외출하는 아들을 따라나가 소변보는 아들에게 약사발을 내밀며 먹이는 장면과 또한 아무리 지적장애아들이라고는 하나 장성한 나이(스물여덟살)의 아들의 소변누는 모습을 빤히 들여다보는 장면은 변태스럽다고도 했을 것이며, 또한 살인까지 감행한 끔찍함은 도저히 이해하지 못할 부분이 아니었나 되뇌어 봅니다.
하지만 자식을 키운 엄마로써 그 심정이 다 이해되고 공감되었습니다.
어리면 어린대로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는지? 그리고 장성한 아들이면 장성한 대로 건강한지? 아들이 허락만 한다면 남들이 변태스럽다고 해도 엄마눈으로 확인하고 싶은 심정이고, 자식의 아픔과 고통을 엄마가 대신해주고 싶은 심정또한 다 이해되고 인정되었습니다.
잘못임을 알면서도 가끔 부모는 자식의 문제로 이성을 잃어버립니다.
자식이 맞고 들어온 상황을 보고 속이 상한 나머지, 청부폭행을 지시하여 감옥까지 갔다 온 모그룹의 회장님이 떠올랐습니다.
자식이란 부모에게 희망이고 행복인 동시에 그야말로 애물단지이기도 합니다.
바보같지만 바보같지 않은 마더의 아들 도준(원빈)이 가끔 엄마가 시킨대로 관자놀이를 누르며 자신의 기억창고를 더듬습니다. 그리고 엉뚱하게도 진실을 기억해내면서 엄마를 경악시킵니다.
"엄마가 나 죽이려고 다섯살때 박카스에 약태워서 먹이려고 했잖아."
도준이가 그 박카스때문에 지적장애아가 되었는지... 아니면 지적장애아임을 알고 엄마가 아들을 먼저 죽이고 자신도 죽으려고 했는지... 영화에서 제가 놓쳤는지 잘 알수가 없었지만, 넉넉하지 않은 살림에 더구나 싱글맘으로 산다는 게 참 힘든 세상임은 부정할 수 없기에 간혹 자녀와 함께 동반자살한 소식을 접하며 안타까움과 애잔함에 눈물짓습니다.
마더 눈에는 진태라는 친구가 못마땅하지만 도준의 단 한명뿐인 친구입니다.
자식이 잘못을 하면 친구탓을 하는 부모들이 참 많음을 주변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맥락으로 친구 잘 사귀기를 바라는 부모의 바람을 담고 있습니다.
진태를 의심했던 마더가 나중에는 진태의 추리에 의지하여 더 자신감을 드러내게 되고, 도준이가 살인누명을 벗고 출소할 당시에 진태는 두부케익으로 도준을 맞이하는... 나름대로 의리있어 보이는 친구입니다.
우리의 국민배우로 국민엄마의 대명사이신 김혜자씨의 그 우아하고 아름다운 인자함과 자상함은 처절하게 변했지만 낯설지 않았습니다. 어떤이는 끔찍하여 국민엄마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고도 합니다만 상황이 다르기에 대처하는 방법이 다를뿐, 그 마음까지 변하지는 않았습니다.
자식위하는 마음은 그대로 잘 나타나 있습니다. 사진을 보십시요. 이 역할을 김혜자씨가 했기에 더 짠하고 찡하고 애달프고 애잔하게 와닿았던 거 같습니다. 비록 외적인 우아함은 찾아볼 수 없지만 아들구하려는 일념만이 그녀를 지배하고 자식위하는 엄마의 마음이 그대로 읽혀집니다.
도움을 받을 곳이 없습니다. 막막합니다. 변호사랍시고 의지하려 했더니 돈만 밝힙니다. 답답하니 스스로 나설수 밖에 없는 처절함이 충분히 이해됩니다.
이런 모성애를 끔찍하게 여기고 치를 떠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분명 결혼하지 않은 아들로 엄마의 관심과 애정이 지나친 잔소리와 간섭으로만 여겨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왜? 누가? 시체를 옥상에 잘 보이도록 두었을까....'
사건추리에 나선 마더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엄마들의 한결같은 모성애의 공통점, 등잔밑이 어둡다고 내 자식을 내가 제일 잘 아는 것 같지만 때로는 가장 이해하지 못하는 게 부모입니다.
범인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군상을 만나는데 이 중에서도 부모없는 아이를 만남이 참 가슴아팠고 저를 많이 울렸습니다.
죽음으로 드러나는 아정이의 존재는 치매할머니와 살면서 끼니걱정을 해소하려고 스스로 쌀떡녀의 길을 선택하여 보는 이로 하여금 가슴 아프게 했고, 자식을 위해 양심까지 버린 마더가 도준이를 대신해 범인으로 잡혀 온 종팔이를 면회하면서
"너 엄마 없니? 엄마 없어!"
하고 질문함과 동시에 곧바로 눈물흘리는 마더를 따라 저도 눈물이 줄줄 흘렀던 까닭은 아이가 장성하여 제 앞가림을 할 때까지는 부모가 꼭 살아서 곁에 머물러야 하는 절실함때문이었습니다.
엄마눈에 늘 모자라 보이지만 나름 희한하게도 기억을 더듬어 내어 엄마를 아연실색시키던 아들
"엄마... 근데 종팔이는.. 왜 시체를 거기다 뒀을까?... 사람들이 잘 보라고... 얘 피 많이 흘리니깐 빨리 병원좀 데리고 가라고 그랬을꺼 같아.."
생각과 기억을 넘나들면서 긴장감을 주는 도준이가 화재로 죽은 고물상 아저씨집 현장에서 엄마의 침셋트를 주워와 엄마에게 건네며
"엄마, 이런거 흘리고 다니지 마."
할 때는 보는이로 하여금 소름돋게 했으며, 끔찍한 일을 저지른 엄마의 기억을 두들기는 아들의 엄마로 괴로움을 침묵의 춤사위를 보이던 엄마의 심정...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 심정이 같은 엄마이기에 충분히 헤아려지면서 저도 모를 내면의 양심을 들여다 보게 하더군요.
이들 母子는 철저하게 끔찍한 사건의 공범자가 되었고, 남에게 사용하려던 허벅지점 침(가슴의 응어리랑 나쁜 기억 쏵 잊을 수 있는 침자리가 허벅지에 있는데)을 결국에는 자신의 허벅지에 꽂음으로, 우리의 마더 혜자씨의 피곤하고 지쳐보이던 눈빛이 해맑은 큰 눈망울로 사슴을 연상시키던 눈빛으로 회복되기를 진심으로 바랐습니다.
아들을 지키기 위한 절박함이 너무 비장하여 끔찍한 일까지 저지른 마더지만, 그녀로 인해 세상의 모든 마더의 숨겨진 마음도 다 드러내 보인 듯해서 부끄러우면서도 공감되기에 그 몸부림이 너무너무 애절하게 와 닿았고... 그러면서도 찝찝함이 오래남는 영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