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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TV

생뚱맞아 감정이입을 방해하는 드라마, '내게 거짓말을 해봐'


전라의 몸으로 목욕탕에서, 혹은 꾀죄죄한 모습으로 미용실에 앉아 파마롤을 감고 앉았을 때... 아는 사람을 만나면 인사를 나누면서도 속으로는 무안해지는 접니다.
그래서
드라마 '내거해(내게 거짓말을 해봐)'의 여주인공 공아정(윤은혜)이 미용실에서 파마롤을 감고 앉아 있을 때, 생각하기도 싫은 유소란(홍수현) 부부가 나타남을 보고, 숨고 싶었을 심정이 충분히 이해가 되고도 남습니다.

더구나 소란은, 아정이가 비록 고백은 못했지만 선배 천재범(류승수)을 사랑함을 빤히 알면서 아정의 사랑을 방해하고자 천재범과 결혼을 한 것 같고, 아정은 상처를 입었습니다. 말이 친구지 사실은 친구하고 싶지 않은 소란이건만, 먼저 아는 척을 하며 남편을 불러 다정하게 굴면서 아정에게 안부를 묻습니다.
 "결혼은 했느냐, 아직 못했지. 결혼은 뭐 아무나 하는 거냐,.."
이미 지난 일이지만 한 때 좋아했던 선배가 앞에서 빈정대는 소란의 얄미운 질문에 자존심이 상했던 아정은, 화가 나서 대뜸 결혼을 했다고 거짓말을 합니다. 
처녀가 간도 큽니다. 미혼이면서 친구에게 지기 싫어서 결혼을 했다는 거짓말을 하다니... 나중에 정작 결혼하려고 할 때 약점이 되면 어떡하려구... 황당한 아가씨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드라마는 정말 드라마일 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정이입을 해보려고 하는 시청자가 된 내 자신 우스웠습니다. 결혼은 아무나 하는 거냐며 빈정대는 소란에게 자존심이 상했던 아정은

 "난 결혼하고 싶은 게 아니라 결혼한 여자가 되고 싶었어."
이런 맘일 뿐이었는데... 일이 이상하게 벌어져, 친구들 사이에 이름만 대면 알만한 호텔 경영인인 현기준(강지환)의 아내로 소문이 나고 말았습니다. 총각임에도 불구하고 자신도 모르게 도둑장가 든 사람처럼 오해받게 된 현기준은 법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준비하던 중, 민폐녀 공아정과 동생 현상희(성준)의 장난에 휘말려, 둘은 진짜 부부인양 행세하기에 이릅니다.

참 엉뚱하고 생뚱맞은 설정이 많을 뿐만 아니라, 내용에 어울리도록 등장인물들도 엉뚱한 사람들이 꽤 많이 등장하는 드라마 같아서 엉뚱인 집합 드라마라고 표현을 해 봅니다.

엉뚱녀 1.
여주인공 공아정(윤은혜)입니다.
자신의 입으로 현기준사장이 남편이라고 한 적은 없습니다만, 그렇다고 적극적으로 아니라고 부정하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신이 처한 상황에 따라 현기준이 진짜 자신의 남편인양 연기하여 유소란을 약올리더니, 법적으로 대처하려는 현기준에게 도리어 한달만이라도 가짜 남편이 되어달라고 부탁했다가 거절당하자, 호텔 손님으로 투숙하여 현기준을 더 곤란하게 만듭니다.

엉뚱녀 2.
공아정의 친구 유소란(홍수현)입니다.
친구가 좋아하는 선배임을 알면서도 접근했고 결혼을 했습니다. 그러면 행복하게 잘 살아야한다는 게 일반인의 상식인데, 소라는 그저 친구가 좋아하던 선배를 자신의 남편으로 만들었다는 기분만 즐길 뿐, 별로 행복해 보이지 않는 가식녀이자, 남에게 보이기 위해 갖은 포장을 하는 과시녀 같은 인상을 풍깁니다. 유소라가 느끼는 행복은, 남의 불행이 자신의 행복이고, 남이 부러워하면 행복감을 느끼는 것 같아 불쌍해 보입니다.

엉뚱남 1.
현기준의 동생
현상희(성준)입니다. 
귀국하던 날, 클럽에서 우연히 술취한 공아정을 만났을 뿐인데,
상희는 신데렐라를 돕는 요술할머니처럼 아정을 돕겠다고 자처합니다. 형이 알지도 못하는 여자와 엮이어 도둑장가 든 사람으로 오해받고 있는 상황을 도리어 즐기는 것 같습니다.
호텔과 관련 된 중국투자자가 한국을 방문하던 날, 형을 떼어놓고 공아정과 함께 공항으로 마중을 나가서는 현기준 사장의 아내로 공아정을 소개합니다. 좋은 인상을 남기게 한 후 형이 공아정의 제안을 받아들여야 할 상황을 만드는 데 일조를 합니다.


엉뚱남 2.
황당무계한 상황에 대해 화를 내면서도 공아정의 남편으로 연기하겠다고 나서는 현기준(강지환)입니다.
까칠한 차도남 인상을 풍기던 현기준이, 공아정의 거짓말에 의해 남편으로 둔갑이 된 입장에 대해법적으로 처리하겠다고 하면서도 태도가 불분명합니다. 단호한 결정을 내릴 것 같은 제스처만 쓰고 어느새 공아정을 돕는 동생의 작전에 휘말리고 맙니다. 드라마 스토리상 아마도 이 남자를 마법에 걸리도록 한 게 분명합니다.
가짜남편으로 연기해 주겠다고 할 뿐만 아니라, 현기준이 아정의 남편이라는 것에 배가 아픈 윤소라가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며 집들이를 강요하자 집까지 빌려주고 진짜 남편인양 행세를 하다가 갑자기 친구들이 보는 앞에서 키스를 감행합니다.  
동생 상희의 아픔을 끌어안느라 사랑했던 여인과도 헤어진 기준이었는데, 또 다시 동생 상희로 인해 자신의 인생이 꼬이기 시작합니다.

엉뚱남 3.
법대 교수인 공아정 아버지(강신일)
젊었을 때 아내를 잃고 재혼을 생각했다가 딸의 반대에 부딪혀 홀로 딸을 키우며 살았습니다. 법대 교수임에도 불구하고 엄마없이 자란 딸이 안쓰럽게만 보여서 그런지 공아정이 좀 버릇없이 행동해도 그냥 넘어갑니다. 
미혼의 딸이 결혼했다는 소식을 다른 사람한테 들었지만 크게 별 반응이 없습니다. 아정이가 거짓말 한 이유를 털어 놓자, '결혼
을 거짓말 한거는 올바른 행동이 아니다' 정도에서 그치더군요. 제 상식으로는 이 아빠도 이해하기 힘든 인물입니다.
딸이야 친구한테 지기싫어서 거짓말했다고 눈물 흘리니 가엾기도 하겠지만, 생뚱맞은 딸때문에 졸지에 기혼자로 소문난 현기준 입장은 헤아리지 않더군요.

그리고 딸의 복장에 대해 아무렇지도 않은가 봅니다. 특히 이런 복장에 대해 엄마보다도 아빠가 더 민감한 반응을 보이기에 꼬집어 봅니다.
일반회사에서도 이런 하의실종 패션으로 출근한다는 것은 용기가 필요할 것입니다. 아무리 유행이고 개성이라고 하지만 조심스런 패션임에는 틀림이 없지요. 공교수와 공아정, 부녀의 자유분망함이 닮았습니다. 더구나 공아정은 공무원 신분으로 나오더군요. 규제는 안하지만 그래도 공무원이면 더 조심스럽지 않을까요. 요즘 젊은이들 유행이다 보니 안입을 수야 없지요. 인정합니다.
여대생인 울딸도 가끔 입는 눈치고요. 당연히 핫팬츠를 입었다는 것을 알기에 엄마인 저는 괜찮다는 생각인데, 남편은 엄청 싫어해서 울딸 아빠 앞에서는 이런 복장 안합니다. 짧은 반바지 입을 때는 상의에 덮히지 않도록 입지요.

'내게 거짓말을 해봐'는 황당무계한 거짓말로 벌어지는 두 남녀의 달콤살벌한 결혼 스캔들을 그린 드라마라고 합니다. 정말 황당합니다. 그리고 살벌합니다. 모르는 사람이 느닷없이 인생에 끼어든다니... 살벌하지 않습니까.
더구나 주변에 이렇게 이기적인 인물이 있다면 더 살벌할 것 같습니다. 친구가 잘되는 꼴이 보기 싫어서 남자를 낚아채고 위선된 모습으로 살아가는 유소란, 자신이 좋아했던 여인을 형수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울부짖던 현상희, 이 두사람은 '내가 안되면 너도 안된다'는 고약한 심뽀를 가진 인물로, 이들의 생각이 불쌍하고 가여우면서도 살벌하게 느껴지구요. 
그리고 윤소라같은 친구같지도 않은 친구라면 안만나면 될 것을... 굳이 자존심 지키겠다고 아무 관련도 없는 남자를 끌어들여 남편이라고 거짓말하는 공아정의 이기심은 황당녀+민폐녀로 더 무섭습니다.
"내게 거짓말을 해봐"
도대체 이 말은 누가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 아리송 합니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자신의 발전을 위해 자신에게 마법을 거는 거짓말이라면 누가 뭐라 하겠습니까.

현실성 없는 드라마임을 확실하게 보여주기 위해 생뚱맞고 엉뚱한 캐릭터가 지나치게 강조되었을 뿐만 아니라, 과정까지도 과감하게 생략되고 압축된 듯한 억지설정과 무리한 전개로 말미암아, 아무리 드라마라고 하지만 감정이입이 잘 되지 않아 붕붕 떠다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