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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놓인방

'얘들아, 너희가 나쁜게 아니야'를 읽고~~

지은이 : 미즈타니 오사무
밤거리를 헤매는 아이들에게 새 삶으로 인도하는 그는 '밤의 선생'으로 불린다.

 

나는 학생을 절대로 야단치지 않는다.

이 대목을 읽는 데 소름이 끼쳤다. 그동안 공부방을 운영하면서 나를 거쳐 간 수많은 아이들에게

성적향상이라는 명목하에 칭찬과 격려도 했지만, 야단도 많이 쳤던 장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밤거리를 떠돌며 폭주족, 본드, 원조교제, 도둑질 등 스스로 좋지 않은 행위를 했다고 고백하는

아이들에게 괜찮다, 지금까지 정말 잘 살아왔어.’ 라고 위로하며 보듬고, 새로운 길로 인도하는

미즈타니 선생은, 얘들아, 너희가 나쁜 게 아니야책을 통해 색안경을 끼고 보는 어른들을 향해

조용하면서도 엄중하게 나무라고 있었다.

 

자신이 원해서 태어난 사람은 없다.

그리고 부모도, 태어나 자라는 환경도, 외모도, 능력도, 스스로 선택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나도 한 때는 부모님에 대해 불만을 품은 적이 있었고, 겉으로 드러내진 않았으나 원망을 했던 적이

있었음을 고백한다. 참으로 죄송스럽다.

적어도 나의 부모님은 이 책에 등장하는 아이들처럼 밤의 세계에 기웃거릴 만큼 외롭거나 불행한

환경을 만들지 않았음을 깨달으며 감사함을 갖게 된다. 그리고 현재 부모가 된 입장에서,

나는 내 아이에게 몇 퍼센트나 만족스런 환경을 만들어줬는지 되짚어 보노라니 자신이 없어진다.

더구나 사랑이라고 믿고서 행한 나의 행동들이 아이가 바라는 것이 아닌, 나만 만족하고 아이는

도리어 거북했던 일방적인 사랑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초보엄마에게 시달렸을 특히

내 큰아이에게 무척 미안해진다.

 

미즈타니 선생은 아이들을 꽃을 피우는 씨앗으로 표현했다.

나도 이 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어떤 꽃씨라도 심는 사람이 제대로 심고 시간을 들여서 정성스레

가꾸면 반드시 꽃을 피우듯, 아이들도 마찬가지임을 내 경험을 통해서 실감한 까닭이다.

하지만 어른들은 기다리질 못하는 어리석음을 발산함이 못내 아쉽다. 나 또한 어른으로써 아이들이

꽃을 피울 때까지 믿음의 시선으로, 사랑과 격려의 마음으로, 묵묵히 지켜보지 못하는 부류의 어른임이

부끄럽고도 미안한데, 특히나 미즈타니 선생이 만나고 다니는 밤거리의 그들에겐 더욱 더 미안함이

크다. 왜냐하면 밤의 세계를 기웃대는 그들에 대해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더 솔직하게

표현하면, 그들 스스로 선택한 길이라고 여기며 무시하고 외면했었기 때문이다.

 

얘들아, 너희가 나쁜 게 아니야

밤거리에서 미즈타니 선생이 만난 아이들의 다양한 사례를 짧은 내용으로 수록한 이 책을 읽는 동안,

내가 중간 중간 한숨을 자주 내쉬었음은 남편의 걱정으로 알았다. 나에게 있어 이 책 내용이 만만하지

않았던 까닭은, 미즈타니 선생이 만났던 아이들에 대한 나의 편견 때문임과 동시에, 어른으로써의 나를

돌아보는 마음이 무거웠던 탓이다.

어른 같지 않은 어른들이 때론 무지로, 혹은 고의로, 생채기를 만들어 아이들에게 고통을 더 가중시키고

있음은 내 가슴을 답답하게 짓눌렀다.

지금 내 가슴에 큰 파도가 일어 한바탕 소동을 벌이기도 하고, 또 다른 마음 구석에선 짠한 바람이 세차게 불어와 혼란을 가중시킨다. 내가 만든 고정관념의 틀에 대한 자각으로 상념에 빠져 허우적대는 나를

본다. 인간존중에 대한 미성숙한 나의 단면에 대해 깊은 반성의 시간을 갖으며, 밤거리를 헤매는

아이들의 외로움과 고통이 그들만의 탓이 아님을 깨닫게 해 준 미즈타니 선생의 용기와 의지에 존경을 보낸다.

늦은 감은 있지만 사회복지에 눈을 돌려 관심을 갖게 된 지금, 차별없는 인간존중, 폭넓은 사고, 무조건적인 수용의 자세를 갖고자 시발점에 선 애송이다. 쉽지 않겠지만 많은 시간이 흘러 언젠가는 변화된

내 마음을 느낄 날이 오리라 믿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미즈타니 선생처럼 밤거리를 헤매는 아이들에게 손내밀 용기가 과연 생길지는 의문인지라 그가 참 대단해 보인다.

그리고 모순된 내 마음은, 우리나라에도 미즈타니 선생처럼, ‘어제까지의 일은 다 괜찮다며 위로가 되어

줄 생명수 같은 분이 어딘가에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