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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돈의교육

학비감면 신청서를 낸 우리딸의 용기? 효심?

5월초, 여고 3학년인 우리딸이 '학비감면 신청서'를 가지고 와서는 저보고 작성하라고 재촉했습니다. 기간은 단 하루밖에 없다면서.
그리고 나머지 부수적인 서류는 다음날까지 갖추어서 제출하면 되니까 수고스럽더라도 갖추어 놓으라면서 아주 강하게 협박조? ㅎㅎㅎ 제가 그렇게 느꼈습니다. 얼떨떨했습니다.
 "딸, 우리집이 학비감면 받을 정도는 아닌것 같은데 네눈에 그렇게 보여?"
 "아뇨. 뭐 꼭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한번 신청해보고 싶어요."
 "우리 아니라도 받을 사람 있을텐데..."
 "아닌가 봐요. 그러니까 우리선생님께서 공개적으로 다 적어서 내라고 하시죠. 학년초에는 개인적으로 따로 교무실로 오라고 하셨는데 우리반엔 한명도 없었나 봐요."
 "없으면 다 잘 살고 있다는 거니까 좋은거네."
 "신청자가 없어서 그랬는지 일단 신청한 사람은 다 학비감면을 받았나 봐요. 다른반에서는 어이없게도 우리보다 훨씬 넓은 아파트에 사는 아이도 해택을 받았다네요. 그러니까 저도 한번 해보려구요."
 "무슨 사정이 있었겠지. 아파트 넓은 평수에 산다고 뭐 다 잘 사는 것은 아니니까"
 "엄마, 그게 아니구요. 대부분 엄마와 같은 생각으로 우리가 어떻게 학비감면을 받아 우리 아니라도 받을 사람 있을텐데.. 그런 생각으로 신청을 기피한 결과같다면서 우리선생님께서 적극적으로 권하셨어요. 그래서 저도 해보려고 하는 거예요."
 "너희때가 예민한 시기니까 정작 학비감면을 받아야할 애는 신청못하고 있는거 아니니?"
 "확실하게 알지는 못하지만 제 주변친구들 보면 다들 괜찮은 환경인 것 같아요."
 "딸, 네말대로 우리가 학비감면을 받았다고 치자. 나중에 문제되지 않겠니? 살만한 집에서 학비감면 받았다고."
 "엄마, 그런 이야기는 초,중학교때 가능하구요. 저도 양심은 있어요. 우리학교 다니는 애들이 빵빵해 보이니까 우리선생님께서 되던 안되던 다들 신청해보라고 하시는 뜻으로 저는 받아들였어요. 아마도 가능할 것 같은데요. 이참에 아빠께 이런식으로 효도도 해보고^^"
 "울딸 기특하기도 하고 뻔뻔하다는 생각도 들고.. 부끄럽지 않겠니?"
 "왜 부끄러워요? 어떤 애는 아빠직장에서, 아니면 부모님이 선생님이라서, 등등 이유로 학비면제 받는 애들이 꽤 많은데 저야 이런 혜택을 한번도 못누려봐서 그런지 떳떳하다는 생각이 더 들어요. 그러니까 엄마는 서류 꼭 갖춰주세요."
 "알았어."
딸의 간곡하고도 적극적인 태도에 밀려 서류 작성도 했고, 다음날 서류도 갖추어서 딸에게 건넸습니다.

힘들게 일하시는 아빠께 조금이나마 효도하는 마음이 들어서 기분좋았다며 당당하게 제출한 우리딸,
 "담임선생님께서 다 제출하라고 해도 한손에 꼽을만큼 몇명만 제출했으니까 아마도 혜택을 받을 수 있으리라는 감이 와요.^^"
 "우리딸의 이런 마음을 용기라고 해야하나? 오기라고 해야하나? ㅎㅎㅎ"
 "에이 엄마는, 아빠엄마를 생각하는 효심이죠.^^"
 "서류 제출할 때 부끄럽지 않던?"
 "왜 부끄러워요? 전혀 아니예요. 잘 사는 애들이 많다는 생각때문인지 저는 혜택을 받아도 된다는 생각이 더 강하게 들었어요.^^"

혜택을 받게 될지 안될지는 현재로썬 모릅니다. 하지만 딸이 전하는 분위기로 봐서는 아마도 해당사항이 있을 것도 같다는 기대감이 저를 기쁘게도 하면서 한편, 딸이 서류작성을 해서 제출하겠다고 적극성을 띄는 것을 보면서 미안하기도 했습니다. 그만큼 딸의 욕구를 채워주지 못하는 부족한 환경에 대한 부모로써의 미안함...

하지만, 정말로 학비감면 혜택을 받아야 할 아이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기에 제 마음 한켠은 찝찝하기도 합니다.
우리딸 시선으로는 부족해 보일지 모르지만 우리부부는 저축도 하고... 급전이 필요한 친지에게 빌려주기는 하되, 우린 한번도 빌린 적없이 살았기에 나름 자부심을 느끼며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학비감면신청.
저소득층에 해당하는 혜택으로, 남매를 키우면서 전혀 해당사항없다고 여긴 우리 부부에게 적극적으로 나선 딸의 행동을 보면서 대견하다고 여겨야 할지... 당당하다고 여겨야 할지... 참 당황스러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