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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돈의교육

고3때 정리했다는 딸의 노트를 보고 찡했던 이유

 

 

대학생인 딸, 자신의 공부도 하랴 아르바이트로 학원강의 뛰랴, 무척 바쁜 나날을 보내는 중에 최근엔 예비고 1학년 과외까지 맡아 주말조차도 짬내는 게 쉽지 않을 정도로 더 바빠졌다.

바쁘면 하루 24시간을 더 잘 활용하게 되는지... 이번학기는 장학금을 받음으로 효도까지 한 딸은, 지금까지 집에 다니러 자주는 오지 못해도 한달에 한번 정도는 왔었는데, 이번달엔 토요일 저녁에 왔다가 일요일 아침차로 가야할 만큼 주말조차도 여유가 없다고 해서 내가 딸한테 다녀왔다.

주말을 이용하여 잠이라도 실컷 자므로써 한주간의 피로를 풀 수 있기를 바라며...

 

딸에게 갖다 줄 반찬과 겨울옷을 챙겼는데, 딸이 또 다른 부탁을 했다.

책꽂이에 꽂힌 수학의 정석과 서랍에 있는 노트를 찾아서 갖다달라는 거였다.

여고시절 옆에 끼고 살던 책과 노트, 우째 버리지 않고 그대로 두었는지 물었더니 자신이 좋아한 수학공부의 흔적을 고이 간직하고자 했음이란다.

 "그 책과 노트는 어디다 쓸려고? 그리고 책이면 책이지, 노트도 안버리고 뒀다구?"

 "예, 그 노트는 수학의 정석 풀이과정을 정리해 둔 거라서 참고하려고요."

 

 

딸이 일러준 곳에서 노트를 찾아 펼치는 순간, 나도 모르게 감탄과 함께 소름이 돋았다.

 '세상에... '

정말 혼자보기 아까울 정도로 순서대로 깨끗하게 잘 정리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딸의 성격상 깨끗하게 필기했을 거라는 추측은 하고 있었지만 해도 이건 너무 심하게 상상외의 노트다.

도대체 누굴 닮아서 이렇게 완벽한 구석이 있단 말인가?

 "너 혹시 강박증있니?"

하고 농으로 물었다가 혹하나 달았다.

 "당연한 거 아니예요? 내가 누구 딸인데^^"

 "내 영향을 받았단 말이니?"

 "요즘은 엄마가 일부러 멍한척 하는 것 같아. 어릴적에 본 엄마는 무슨 일이든 완벽하게 하려고 했던걸로 기억해."

 "아닌데..."

 "난 그렇게 보였어."

 "딸, 또 하나 물어보자. 내가 언제 너보고 글씨 잘쓰라고 압력준 적 있니? 네 노트보는 순간 소름이 돋았어. 엄마가 잘못한 거 있나 해서."

 "아뇨, 나한테는 글씨 잘 쓰라고 직접 말한적 없었지만 엄마가 오빠 초등학생 때 글씨 잘 쓰라고 지도하는 거 보고 자라서 그런지 나도 글씨 잘써야겠다는 생각을 했지 뭐."

 "그래?"

 "엄마, 나 잘했지^^"

 "음... 깨끗하게 정리는 잘했는데... 좀 슬펐어. 내가 너한테 강박증 생기게 한 것 같아서..."

 "아니니까 걱정말아요. 글씨 잘 쓰면 보기 좋잖아. 그리고 정리는 내가 좋아서 한거고."

 "일부러 이런 풀이과정 노트까지 만들 정도로 수학이 좋았니?"

 "ㅎㅎ"

노트에 깨끗하게 정리하기까지 수많은 연습과정이 있었다고 한다. 하긴 수학이 좋아서 수학공부만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수학에 몰두했던 딸이니까.

 "풀이과정이 책에는 없니?"

 "책 뒤쪽에 붙어 있는데 좀 불편해. 분리시키자니 책이 지저분해 질 것 같고... 그리고 내가 이해한 풀이과정하고 다른 것도 있고, 수많은 반복과정을 통한 연습량의 결과물을 남기고 싶었어. 이렇게 만들어 놓으니까 급할 때 참고하기도 좋았고, 고3때 내 친구들도 유용하게 사용해서 뿌듯했는데 또 다시 사용하게 되네."

 

새로 맡은 학생한테 제대로 도움주기 위해 그동안 덮어 두었던 책을 다시 펼치는 딸의 모습을 보노라니 대견하면서도 한편 눈물이 핑 돌았다.

내가 아들과 딸에게 사랑과 관심을 빙자한 교육을 내세워 은연중에 압력을 가한 결과물 같아서 마음이 찡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