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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다한생각

젊게사는 엄마가 좋다. 그런데 왜 걱정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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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우연히 엄마와 단둘만의 나들이로 해인사를 다녀온 것은 참 잘한 일이었습니다. 앞으로 이런 기회를 자주 만들어야겠다는 다짐의 시간이 되었고, 집을 떠나 새로운 공간에서의 대화는 그간에 하지 못했던 이야기도 자연스럽게 이끌어낼 수 있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결혼으로 친정과 멀리 떨어져 살기에 자주 뵐수는 없지만, 엄마와 함께 하는 시간이면 늘 이야기가 많습니다. 만나지 못했던 동안 일어났던 갖가지 이야기를 나누기때문입니다. 엄마에게 딸이 저뿐인 관계로 독차지 할수 있다는 점은 참 좋습니다만, 가끔은 외롭기도 합니다. 나이가 들수록 더.
3형제에 딸하나로 4남매를 두신 엄마도 딸이 저 한명뿐인 것이 외롭다고 하십니다. 가깝게 살면서 자주 말벗이 되어주지 못함이 서로 아쉬운 모녀지간입니다.
저 성장기에 있을 때, 울엄마는 언니도 없고 여동생도 없는 저를 안쓰러워 하시면서 저에게 친구처럼 대해주셨고, 친구들이 엄마를 보면 꼭 언니처럼 편하게 대해주셔서 젊은 엄마를 둔 저를 부러워했습니다. 그렇다고 엄마연세가 젊다는 것이 아니고, 엄마의 사고방식이 젊어서 말이 통한다는 뜻입니다.

현재 울엄마는 팔순을 향해가는 칠순중반의 할머니지만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또래의 할머니와는 사고방식이 너무나 다릅니다. 친정엄마를 뵐때면 외모는 세월따라 늙고 있는 것 같은데, 삶에 대한 사고방식은 오히려 점점 더 젊어지고 있는 비결이 참 궁금할 정도로 엄마는 매사가 진취적이고 씩씩하여 저를 놀라게 합니다.
이는 저만 느끼는 것이 아니라, 제남편과 딸이 저와 비교하면서 할머니가 훨씬 젊고 씩씩한 의식을 가지고 계신 분이라고 할 정도로 지나침이, 제겐 걱정거리가 됩니다.

몇년전 무릎이 몹시 아파서 걷지 못해 관절수술 직전까지가는 고통도 겪으셨지만, 의사선생님의 권유로 칠순을 넘기신 엄마가 체중을 무려 10여kg이나 빼는 의지를 보여주셔서 주변사람들을 놀래키며, 건강을 회복하셔서 잘 걸어다니시고 체중조절을 위해 소식하며 자신을 철저하게 관리하시는 모습은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스스로 건강관리를 하시고 젊게 사시는 엄마가 참 좋음에도 불구하고 한편으로 걱정되는 까닭은, 2,3년전 엄마가 다단계회사에 다니시는 듯한 분위기를 풍겼기 때문입니다. 엄마는 아니라고 극구 부인하시고... 그 당시 제가 화를 내면서 엄마가 하는 일에 부정적으로 협박했습니다. 그후 엄마는 자신의 일에 관해 입을 닫으셨고 저는 내내 궁긍증을 가지고 지냈었는데... 지난번 나들이에서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끌어낼 수 있었던 점이 무엇보다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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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공기속에서 자연을 벗삼아 바쁜 것없이 여유로움에 젖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조심스럽게 그때를 회상하며
 "엄마, 아직도 그 다단계 하세요?"
 "다단계? 야는 그런거 아이라꼬 해도 아직도 안믿네. 다단계 아이라니까"
 "그럼 뭔데요? 무슨 회사길래 엄마가 건강식품이니 속옷이니 화장품이니 등등.. 여러가지 물품을 팔려고 그러셨어요?"
 "몰라도 돼. 그리고 걱정안해도 된다카이. 엄마일은 엄마가 알아서 하니까."
 "엄마 우리가 자식이 되어서 엄마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다가 혹시나 엄마가 잘못되면 뒷감당은 자식인 우리가 책임져야 하는데... 다단계니 뭐니해서 엄마가 빚이라도 져놓으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할지 어느정도는 알고 있어야 하잖아요. 그러니까 말해주세요."
 "......."

한참동안 가만히 계시던 엄마가 말문을 여셨고, 다단계회사는 아니었습니다. 회사명만 되면 알만한 모화장품회사였던 점은 그나마 안심이 되었는데, 방문판매하는 형식을 띠고 있는 그 회사에서 취급하는 제품이 화장품뿐만 아니라 참 다양했습니다.
"엄마 용돈이 부족해?"
"야는.. 용돈때문에 하는 것은 아니다. 집에만 있으면 뭐하노 우두커니... 그래도 오전에 나가면 교육시간을 통해서 세상돌아가는 이야기에 좋은 이야기 많이 듣고, 출근하는 사람들이 나보다 젊어서 활기차고 그런 점이 좋아서 그러제."
"엄마, 심심하시면 경로당이나 노인대학 같은 데 가서 취미생활강좌도 듣고 그러면 되잖아요."
"친구따라 한번 가봤는데... 그곳은 내 취향이 아니더라. 노인냄새 풀풀 풍기는 그런 곳에 가봐야 전부다 늙은이들 밖에 없는데 뭐 배울게 있니? 자식자랑 며느리 흉 등등... 뭐 그런 이야기하면서 노인티내는 것 정말 싫더라. 젊었을 때는 나이든 사람 따라다니면서 배울게 있지만, 엄마나이정도되면 젊은사람들 틈에 있어야 새로운 걸 배울게 있단 말이지. 한개라도 발전적인게 있어야지."
"울엄마 그래서 점점 더 젊어지고 있구나."
"니보기엔 어떤지 몰라도 나 이래봐도 회사가면 인기좋다. 늙은이 취급당하지 않고 젊은엄마들과 똑같은 대우받으며 발전적인 이야기를 듣는게 얼마나 좋다구."

맞는 말입니다. 발전적인 이야기, 그리고 나이들었다고 인생 다 산 것처럼 옛추억에 빠져서 신세한탄하는 또래의 할아버지, 할머니보다는 울엄마의 사고방식이 밝고 건강함이 좋습니다. 일을 통해 젊은사람들과 소통한다는 이런 점이 울엄마를 또래보다 훨씬 젊게 만들었나 봅니다. 참 감사한 일이지요.
하지만 이런 엄마를 무조건 좋아라만 할수 없는 이유는, 판매에 앞서 먼저 시범삼아 물품을 구입해 사용해 본후 장점을 알리는 것이 좋다며 교육할 것이고. 이에 울엄마는 분명히 구입할 것이고...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혹시나 부채를 만들고 있지나 않은지 그게 걱정인 것입니다. 아닌게 아니라 안보던 물건이 하나두울 늘어나고 있음을 느낍니다.
제가 약간의 관심을 표하니까 이런것은 이래서 좋고, 저건 저래서 좋고 한참을 제품 자랑으로 신이 난 엄마에게서 일을 가지고 꿈을 키우는 희망적인 삶이 느껴져 보기 좋았고, 그동안 다단계가 아닐까? 하던 의심과 불안감에서 벗어날 수 있어서 좋았지만, 행여라도 울엄마 좋다는 제품에 너무 빠져서 손익계산을 잘못할까봐서 슬그머니 걱정이 되기도 해서 잘 하신다고 격려를 해야할지? 말려야 할지? 혼란스럽습니다.
행여나 회사의 상술에 상처입지 않는 엄마가 되기를 바랄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