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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돈의교육

학생유치가 더 급한 지방사립대 교수의 한숨

추운 겨울을 보내고 꽃피는 춘삼월을 맞은 교정에는 신입생들의 호기심어린 눈빛과 발걸음이 재학생속에 보태져서 활기찬 학교풍경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국,공립? 아니 환경에 따라서는 오히려 사립쪽을 더 선망하는 초.중.고등학교와는 달리, 지방에 위치한 대학교는 인기있는 수도권내 대학교에서 찾아볼 수 없는 말못할 고민이 숨은 가운데 새학기를 맞이하였습니다.

지방 사립대 교수를 남편으로 둔 고향친구에게서 들은 이야기입니다.

대학진학을 원하는 학생들이 늘어나면서 그 수를 감당하려고 대학수를 늘렸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정말 까마득한 옛이야기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나 요즘엔 오히려 정원미달로 말미암아 재정 위기로 어려움을 겪는 대학교가 늘어나는 추세라고 하는데, 수도권보다는 지방이 아주 심각하답니다.
학생 인구도 점차적으로 줄어드는 현실인데다가 진학하는 학생들이 수도권으로 몰리는 현상으로 인해, 지방의 많은 대학들이 모집정원의 80%를 채우지 못하면 재정위기를 맞게 된다는데... 이를 극복코자 학교에서는 인기없는(?)과를 퇴출시키게 된답니다. 이를 경우, 교수도 자연스럽게 퇴출위기를 맞기에 연구보다는 학생유치가 더 시급한 사정이라고 합니다.

그리하여 고3 수능이 끝남과 동시에 시작되는 홍보활동에 참여하여 학생유치를 위해 전국을 돌면서 온 힘을 쏟게 된답니다. 분명 의무는 아닌데, 의무가 되어버린 듯한 느낌으로 교수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친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저도 모르게 갑자기 목이 메였습니다. 어렵사리 교수가 되었음을 알기에...

예전에는 대학교 홍보활동은 재학생들 몫으로 각 고등학교를 돌면서 자신의 학교를 홍보(인기있는 대학교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모습)하며 신입생지원이 많기를 기대했다는데... 언젠가부터 수능이 끝난 고3학생들에게 자신의 학교로 오라는 뜻을 비추면서 홍보활동에 앞장서고 있는 사람은 재학생이 아닌 교수몫으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고3학생들에게 직접적으로 명함을 내밀면서 홍보활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학부모회를 찾아다니면서 내미는 명함이 수백장?에 이른다니... 대학교 홍보사원 못지않은... 물품을 파는 것도 아니면서 세일즈맨 같은 기분마저 느끼게 되는 처량한 신세에 한숨을 짓게 된답니다.

뭐 그렇다고 지방 사립대 교수가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구요...
인기과, 비인기과에 따라 교수에 대한 예우는 물론 다르겠지요.
그리고 학생들 지원이 많은 유명한 사립대학교에 재직중인 교수는 알지 못할 일이구요.
또한 지방이라고 하더라도 국.공립대 교수는 그나마도 덜하구요. 경제적 여건상 수도권내 사립대로 진학하지 못하는 학생들은 지방의 국공립대를 선호하니까요.

지방에서 정원미달 사태를 맞아 재정위기를 맞게 되는 대학교에서는 학생들 간 벌어지는 입시경쟁이 아니라, 교수들 간 학생유치 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진다는 말을 들으며 적잖이 놀랐으며, 이어 대학에 올 실력도 안되는 학생도 정원수를 채우는 현상이라 대학교육의 질도 형편없이 떨어지고 있다니... 지방 사립대 교수가 받아들이는 이 어쩔수 없는 현실이 답답하게 와 닿았습니다.
정원미달로 재임용에 탈락되는 고용불안을 떨쳐보고자 연구는 뒷전으로 밀리고, 학생유치에 더 관심을 쏟아야하는 처지가 되어버린 교수, 학자로써의 본분보다는 학생모집이 더 우선이 된 참담함을 겪는답니다.

그래도 살아남기 위해서 발버둥치지만 권한을 가진 재단이사장한테 행여라도 미운 털이 박히면 정원 미달 학과로 발령내고 그 학과의 신입생 숫자가 웬만큼 차지 않으면 퇴출시키는 부당한 사례도 있다니... 힘없는 자로써 그저 끙끙 가슴앓이를 앓는답니다.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았지만 급여에서도 많은 차이를 느끼는 것 같습니다.
인기있는 명문사립대 교수를 '귀족교수'라고 칭하는 걸로 봐서...

재단에서는 교수 처우를 개선해 교육의 질을 높이는 것보다는, 건물의 외관이나 인테리어를 개선해 학생 유치에 더 열을 올리고 있답니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을 보면서도 개선을 요구하지 못하는 교수... 승진이나 재임용을 하려면 학교 당국과 갈등을 절대로 빚어서는 안된다며 한숨을 짓습니다.

중.고등학교 교사 아내보다도 못한 자신의 처지가 비참하게 여겨진 어떤 교수는 우울증까지 앓기도 한답니다.
유학가서 박사학위까지 받았지만 그에 상응한 보답을 하지 못하는 자식으로써, 남편으로써, 부모님께도 아내에게도 면목이 없는 자신의 처지를 부끄럽게 여기면서도 재임용에서 탈락될까봐서 노심초사하는 어느 지방사립대 교수의 한숨섞인 실상을 옮기는 제 마음도 무겁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