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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들이,여행

화마의 상처와 마주친 낙산사

낙산사는 학창시절 나의 수학여행지로 친구들과의 추억과 함께 흑백사진속에 간직되어 있는 곳이다.
몇년전 화재로 말미암아 피해까지 입었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접하고서 꼭 와보고 싶었던 곳을 찾게 됨이 무척 반가웠는데, 함께 한 일행의 다수의견에 밀려 제대로 둘러보지도 못하고 미*련 이란 두글자를 새기고 돌아서야만 했다.

후문으로 입장한 우리일행은 '의상대'까지만 발길을 옮겼을 뿐, 눈앞에 보이는 홍련암도 해수관음상도 그저 멀리서 바라본 것에 만족하며 빠르게 모습을 감추니, 나홀로 아쉬움이 남아 발걸음이 자꾸만 뒤쳐졌다. 이런 내 마음을 읽은 남편이 다음에 기회를 만들어 둘만 와서 느긋하게 돌아보자는 기약에 위안삼고 돌아설 수 있었다.

낙산사 정문으로 입장했더라면 떨어져 있는 의상대나 홍련암을 못보는 아쉬움을 남겼을지도 모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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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로 둘러싸인 낙산사가 화마에 휩싸이며 큰 상채기를 남겼지만, 건물모습은 웬만큼 복원되어 가고 있지만,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산의 나무들인데... 나도 모르게 한숨이 절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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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벗은 산처럼 느껴지는 저곳에 간간이 보이는 까만색의 정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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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이서 확인하고 보니 가슴이 울컥한다. 불에 탄 나무를 잘라내고 남은 시꺼먼 나무밑동이 수없이 펼쳐지는 낙산사의 상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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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산이 온통 이런 모습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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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심겨진 나무들이 잘 자리잡기를 검은 밑동은 관광객들과 함께 걱정스런 시선을 던진다.
 
오른쪽 바위옆에 서 있는 건물이 홍련암으로, 의상대사가 본절인 낙산사를 창건하기 앞서 관음보살의 진신(眞身)을 친견한 장소로 알려지고 있다. 의상대와 홍련암은 해수관음상과 더불어 산불피해를 입지 않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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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문을 통과하여 먼저 보게 된 이 건물이 다래헌으로, 기념품을 파는 가게와 더불어 찻집이 있다. 새벽에 잠깐 내린 눈이 테이블을 차지하고 있음이 고즈넉하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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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래헌 맞은 편에 의상대사를 기리는 '의상기념관' 자리잡고 있으며, 오른쪽 자락에 공양관이 쬐꿈 보인다.
다래헌이나 의상기념관은 학창시절 수학여행때는 없었던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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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이후 보여준 국민들의 관심과 자비에 보답하고자 입장료를 폐지하고, 매일 점심 국수공양(정해진 시간에만)과 커피를 무료로 제공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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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상대사(義湘大師) (625∼702)
신라의 승려로써 당나라에 가서 공부하고 돌아와, 관음보살이 있다는 이곳에 낙산사를 지은 주인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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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강원도 양양의 큰 산불에 소실된 낙산사의 잔해들.
불에 탄 낙산사 대웅전 대들보를 이용하여 만든 수제악기도 전시되어 있었는데... 그 악기로 연주하면 무척 애잔한 소리가 날까? 아님 축복을 비는 밝은 소리가 날까? 혼자서 상상하느라고 디카에 담았는지조차도 확인하지 못한 아쉬움을 남겼다.(당연히 담았다는 착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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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성을 띤 국자가 나란히 걸려있는 약수터도 새로 정비한 듯 깨끗한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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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멀리 해수관음상이 보인다. 내 기억속 빛바랜 앨범에는 해맑게 웃는 소녀들이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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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떨어진 위치에 자리하고 있어서 산불의 피해는 없었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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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세월을 견디기에는 사람들의 애정어린 관심도 중요하지만, 축대가 무너졌음을 알리는 현수막을 보노라니 자연의 도움도 절실하게 필요함을 깨닫게 된다.
'의상대'는 의상대사가 당나라에서 돌아와 낙산사를 지을 때 이곳에서 산세를 살피고, 수행처로 전해지고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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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상대에서 바라본 동해바다의 경관이 아주 멋지다. 사진은 형편없지만.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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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여행 후,
다시 찾은 낙산사 탐방은 화마의 자국만 확인하고 돌아선 짧은 시간으로 말미암아 아쉬움만 더 키운 곳이 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