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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들이,여행

세계유산 한국의 서원 중 '병산서원'을 둘러보다

큰댁에 아주버님이 돌아가신 후 몇 해 지나지 않아, 장조카가 집안의 모든 기일과 명절 제사를 지내지 않기로 결정했다.

동서형님께서 살아계신 동안은 유지될 것으로 여겼기에 갑작스런 결정에 당황했지만, 장조카의 이같은 결정이 있기까지

많이 생각하고 고민했음이 짐작되므로 따르게 되었다.

장거리를 오가는 것도 힘들지만 제사 음식 준비로 분주했던 몸과 마음에 여유로움이 생기니 명절에 대한 강박증이

해소된 점이 개인적으로 좋았다.

결혼하고 얼마만인가? 안동을 일년에 대여섯차례 지나다니면서도 감히 엄두도 내지 못했던 여유를~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안동에서 차를 멈추며 누려보았다.

ㅎㅎ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유교과 선비의 고장으로 조상님께 제사로 예를 갖춤에 엄격한 안동 나들이라니~~

더 놀라운 것은 명절연휴에 관람하러 방문한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는 것이다.

 

잘 정비된 주차장에서 5분 정도 걸으니 서원이다.

 

세계유산에 등재된 한국의 서원 중~ 

자연경관과 참 잘 어우러지게 지어진 병풍같은 '만대루'가 유명한 병산서원을 둘러보았다.

가끔씩 사극에 '만대루' 등장하여 관심이 갔던 곳이었는데, 드디어 직접 보게 되었다.

고종 때 흥선 대원군이 서원철폐령을 내렸다는 건 학창시절 역사시간을 통해 들었다.

철폐령 속에서 헐리지 않고 살아남은 47개의 서원과 사당 중 하나로 유명하다.

 

병산서원 (사적 제260호)

고려시대부터 사림의 교육기관으로 풍산읍에 있던 풍악서당을 서애 류성룡이 선조 8년에 이곳으로 옮겨온 것이

'병산서원'의 처음 모습이라고 한다.

서애 류성룡은 임진왜란 당시 명나라와의 외교를 통해 원군을 이끌고 군량과 전략을 총괄하며 조선을 지켜낸 인물이자

성리학적 학문에도 정통한 유학자로 1607년에 타계했다. 그를 따르던 제자와 유생들이 1613년 존덕사를 창건하고

이듬해 이곳에 위판을 모시는 사당을 세움으로, 학문을 연구하는 공간과 제사를 지내는 공간을 갖춘 정식 서원이 되었고,

철종 14년에 병산이라는 사액을 받았다는 안내문을 옮겨본다. 

 

서원이 번성하던 시기의 한 본보기로 여겨질 만큼 지은 솜씨가 빼어나고, 보존이 잘 되어 있는 편이며,

주변의 아름다운 자연과 조화를 이루도록 지어져, 한국 서원 건축의 백미로 이름나 있는 곳이라고 한다.

 

영국의 고 엘리자베스 여왕이 안동을 다녀가시면서 하회마을외에 이곳도 다녀가셨는지 기억이 잘 안나지만

안동~하면 유교정신을 외면할 수 없는 고장으로 꼽히는 곳으로 알고 있다. 

 

 

서원의 정문인 복례문이다.

복례문은 극기복례를 통해 인(仁)을 실현하고자 하는 서애 선생의 학문의 뜻이 담겨 있다고 한다.

관람자들이 무척 많아서 사람을 피해 찍을 수가 없었다.

AI를 이용하며 사람을 지우는 방법이 있다는 광고는 보았으나 나는 활용을 못해 모자이크 처리~

 

짙은 분홍색의 꽃으로 수놓는 배롱나무가 만개한 시즌에 방문하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복례문을 들어서니 작은 연못이 보인다.

선비들이 마음을 닦고 학문에 정진할 수 있도록 배려한 서원 속의 정원이라 하며 '광영지'라 소개하고 있다.

안내문을 옮겨 소개하고자 한다.

'광영'이란 주자의 시 '관서유감'이란 시 중에서 '하늘빛과 구름이 함께 노닌다'라는 구절을 인용하여 지은 이름이라 하고,

연못 모양을 보면 네모난 연못 가운데 둥근 섬이 있는데, 이러한 한국 전통 연못의 모습을 '천원지방'이라고 한다.

이는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는 뜻으로, 동아시아 사회의 전통적인 우주관이자 세계관을 나타낸 것이라고 한다.

 

'광영지'는 세상을 비추는 거울로서의 연못을 맑게 하기 위해 늘 신선한 물을 공급하듯이 생각(사유)의 근원인 책읽기를

게을리 하지 말라는 서애선생의 가르침이 담겨있다. 맑은 거울 같은 연못으로 하늘빛과 구름이 내려오고 저물 무렵

병풍처럼 둘러진 산수를 마주하며 흘러가는 물처럼 한결같은 마음으로 학문하고 禮를 배우고 실천하는 가운데 인의 세계로

세상의 바른 이치로 다가갈 수 있음을 상징화 하여 드러낸 것이다.

 

사소해 보여도 부여한 의미를 통해 선조들의 지혜를 느낄 수 있어서 감탄했다.

 

 

정면으로 보이는 넓은 지붕을 한 건물이 '만대루'며 좌우에 동재, 서재가 있다.

'만대루' 뒤로 병풍처럼 펼쳐진 산이 '병산'이고 산아래로 강물이 흐르는 이곳은, 하회마을의 주산인 화산을 등지고

앞으로는 낙동강을 품은 배산임수 지형이다.

 

 

'만대루'(보물 2104호 지정)

현판이 보이도록 정면에서 담지 못해서 많이 아쉽다.

7칸의 긴 누마루가 일곱폭의 병풍같다.

 

 

우뚝솟아 보이는 병산서원의 '만대루'

천정에 '명고'라고 불리는 북이 매달려 있다.

이는 유생들이 잘못을 했을 때 이 북을 울려 자신의 잘못을 알리고 반성했다고 하는데,

지식을 쌓는 학문과 더불어 삶을 대하는 도덕적 수양에도 힘쓴 흔적임을 엿보면서

서원이란 곳엘 처음 방문해서 그럴까? 난 우와~~ 대단하다~~ 감탄하며 나를 되돌아 본 시간이기도 했다.

이런 의미를 제대로 깨달은 인재들이 몇이였을까?

 

 

'만대루'는 목재를 다듬지 않고 그대로 사용하고 장식과 기교도 없이 꼭 필요한 요소만을 갖추고 건축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휘어진 모습 그대로 서 있는 기둥들과 자연 그대로의 주춧돌, 커다란 통나무를 깍아 만든 계단 등은 건축과 자연이 어우러지는

한국 전통 건축의 빼어난 멋을 그대로 보여준다. 이상은 건축물에 대한 설명이라면 의미도 한번 되새겨 봄직해서 옮겨본다.

 

기둥의 위 아래 굵기와 길이도 일정치 않음의 의미는, 서원에 들어온 미숙한 인간이 학문을 닦아 반드시 한 덩어리의 인재로

완성된다는 상징을 담고 있다고 하니, 교육적 철학 해석에 머리가 저절로 숙여진다.

 

 

나무기둥의 길이도 일정치 않아 보였을 뿐만 아니라, 부족한 높이는 돌로 채워져 있는 데

이 또한 일정치 않은 돌들이 받혀져 있어서 불안해 보이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다.

동재

 

'병산서원'이란 현판이 걸린 입교당 건물이 보인다.

'입교'는 하늘로 부여받은 착한 본성에 따라 인간의 윤리를 닦아가는 가르침을 세운다는 뜻이라고 한다.

서원의 강당인 입교당 대청마루에 단체객들이 옹기종이 모여앉아 해설사의 열띤 설명을 들으며

건물과 자연을 감상하고 있었다.

 

 

단체객들이 떠난 후 대청마루의 한켠을 담아보니 액자같은 느낌이다.

 

입교당으로 올라가는 돌계단의 높이가 유난히도 다른 건물 계단보다 높았다.

무릎이 성치 않은 사람은 힘들게 오르내리는 높이임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내 뼘이 약 20cm 이다.

깨달음으로 실천하는 배움이 쉽지 않음을 상징적으로 가늠해 보게 한 계단인가?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동재에 열린 창을 통해 서재 건물 관람

 

 

입교당 뒤 '내삼문'

향사례를 지내는 존덕사로 들어가는 문으로, 유일하게 색이 들어가 있다.

문이 닫혀 있어서 감히 들어가 볼 생각을 못했다.

양쪽에 큰 배롱나무가 있다.

8월에 방문하여 꽃이 핀 배롱나무와 어우러진 또 다른 휠링의 세계를 맛보고 싶다.

 

 

고직사

ㅁ자형 주택으로 서원을 관리하는 사람의 거처로서,

유생들에게 식사제공 및 제사때 제수를 준비하기도 하고

식량품을 보관하고 유생들의 숙소로도 활용했음

 

문이 없는 대신 달팽이 모양으로 만든 그 시대 화장실

안으로 말려 있어서 밖에서는 안이 보이지 않는다.

두말하면 입아프지 선조들의 지혜가 녹아있음에 저절로 감탄하게 된다.

 

비도 간간히 내리고 하늘도 맑지 않은 회색빛 구름과 더불어

병산서원은 화려하지 않은 수묵화의 묵직함과 기품을 선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