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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돈의교육

오빠는 새로 구입한 운동화의 상표를 왜 떼냈을까?


지난 일요일, 형님의 칠순을 맞아 대구에 있는 큰댁에 내려가는 길이었습니다. 아침 도착을 위해 새벽에 나선 길이라 도로는 한산했지만, 잠이 부족한 남편이 혹시라도 졸음운전을 하게 될까봐 염려된 우리 모녀는 수다로 차안을 채웠습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다양한 이야기가 오가던 중, 뜻밖에도 딸의 입에서 불만이 섞여나와 우리부부를 당황스럽게 했습니다.
 "아빠, 이번에 치르는 큰댁의 행사엔 또 얼마 내놓았어?"
 "무슨 소리야?"
 "누가 아프다, 무슨 행사다.. 해서 뭔일만 터지면 아빠가 해결사처럼 물주가 되길래 물어보는 거야."
 "어른들이 알아서 하는 일에 궁금해하지말고 잠자코 있어."
 "난 아빠가 너무 불쌍해서 그래. 왜 우리집안에는 뭔일만 있으면 아빠를 힘들게 하냐구."
 "딸~, 그만해. 큰일에 아빠가 힘이 되어주는게 아빠의 낙이구나 하고 생각하면 돼."
 "엄마도 마찬가지야. 왜 엄마조차도 아빠가 힘들어 하는 걸 빤히 알면서 가만히 있는거야. 좀 적극적으로 나서서 아빠를 보호하지 않고..."
 "아빠가 힘들어도 맘이 편하다잖아. 그러니 어떡해? 큰돈나간다고 우리가 당장 굶는 것도 아니고... 우리가 조금 더 절약하는 수밖에... 근데 이번에는 돈들지 않으니까 신경꺼."
 "절약은 왜 우리만 해야돼? 큰댁에서 만나는 OO이나 OO이 보면 우리보다 훨씬 더 많은 혜택을 누리고 사는 것 같던데... 아무말도 안하고 잘 도와주니까 우리가 되게 부잔줄 아나봐. 뭔일만 있으면 으례히 아빠가 알아서 물주가 되어주는 걸로 인식되어 있는 것 같아 그게 싫단 말이야. 아빠는, 오빠하고 내가 얼마나 참고 자제하며 사는 줄도 좀 알아줬으면 좋겠어."
 "아빠가 너희한테 못해준게 뭐있다고 말을 그렇게 해?"
 "딸~ 엄마는 알고 있어. 오빠랑 네가 많이 양보했다는 것을... 당신도 이점은 애들한테 고마워해야 돼."
 "내가 뭘 어쨌다구? 당신까지 그러는 거야."
 "당신눈엔 안보여? 우리애들 하고 큰댁 조카네 애들의 차이점이... 하다못해 옷차림이라도 비교해봐."

딸의 불만을 모르는 것은 아니나, 안다고 해서 우리가정의 씀씀이가 쉽게 바뀌지는 않을 것입니다. 큰돈이 들어가는 집안의 일은 울남편이 거의 부담하다시피 하는 대신에, 우리가족은 더 줄일 것도 없는데 더 근검절약하는 생활을 하며 미래의 위기상황에 대처하려고 준비합니다.

우리부부는 유명상표에 대해 잘 알지 못합니다.
우리부부는 아이 세대뿐만 아니라 우리세대에서도 옷이나 가방 등 소품에 대한 유명상표에 대해 잘 알지 못하며 무심합니다. 우리살림에 맞는 지출을 하며 살았기에 유명상표니 잡표니 뭐 이런 것에 연연해 하지 않고 살았습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시장표(잡표)를 애용하게 되었고 아이들도 그렇게 키웠는데, 아이가 자라면서 상표에 대해 눈을 뜨게 되었지만, 감히 우리부부에게 표현을 할 수가 없었답니다. 이유인즉, 아빠나 엄마가 상표에 대해 신경을 안쓰는데 자식이 되어, 상표타령을 할 수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회상하면서 전하는 딸의 말에 의하면, 오빠나 자신은 또래 친구들에 비해 상표에 대해 꽤 늦게 깨달았을 뿐만 아니라, 알았다고 해서 내색을 하지도 않았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새로 구입한 운동화에 붙은 상표를 떼내던 오빠를 봤습니다.
중3인 오빠가 부모님과 함께 동행하여 새 운동화를 구입한 날입니다. 초등 5학년이었던 딸이 우연히 목격했는데, 오빠가 그날 밤 새로 구입한 새 운동화에 붙은 상표를 묵묵히 떼내고 있는 광경을 보게 되었답니다. 그 당시 오빠의 행동이 이상했지만 아무말않고 가슴에 담았었는데, 딸이 중 2되었을때 비로소 오빠의 행동을 이해하게 되었다면서 말문을 열었습니다.
오빠가 새 운동화 상표를 떼낸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지금도 아이들이 선호하는 상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당시에 올스타라는 상표가 아이들에게 캔버스화로 인기가 있었답니다. 중3 오빠(딸 초5)가 구입한 운동화 상표는 원스타?로 시장 신발가게에서 구입한 운동화로, 올스타라는 상표를 흉내낸 잡표였다는 것을, 딸은 중2가 되어서야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말로 표현은 안했지만, 오빠는 잡표인 것이 창피해서 그 상표를 떼내고 신은 것 같아 마음이 아팠고, 아빠 엄마의 무심함에 대해 속상했지만 말을 할수가 없었다는 딸, 왜냐하면 아빠구두를 봐도, 엄마신발을 봐도 널리 알려진 상표가 붙은 것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랍니다.
 
눈물이 났습니다.
 "엄마 울리려고 한 얘기가 아니야. 엄마 울지마. 이건 오빠도 모른단 말이야."
 "자~식 그럼 말을 하지... 네 오빠만 생각하면 그뿐만이 아니라, 온통 미안한 거 투성이라 안그래도 마음이 아픈데... 운동화 하나 그거 못사줄까봐..."
 "울엄마 대구가서 오빠보면 운동화부터 사준다고 하는 거 아냐. 그만 울어"
 "딸~ 너는 갖고 싶은거 있는데 말못하고 참은 거 없니?"
 "ㅎㅎㅎ 뭐 그래도 난 오빠에 비하면 그나마 혜택을 누리고 살아서 괜찮아. 가끔 억울한 생각이 들긴 해도...^^"
 "......"
 "우리가족은 절약하느라 유행이니 유명상표니 뭐 그런거 하고 관계없이 살고... 큰돈 들때마다 아빠가 부담하는 게 힘들어보이는 것이 억울하고 아빠가 안쓰러워서 그렇지... "

좀 알려진 상표가 붙은 제품에 비해 시장표(잡표)가 싸긴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또래집단에서 유행하는 상표로 된 운동화나 옷을 못사줄 처지는 아니었는데... 우리애들 스스로 집안사정을 감안하여 절제하는 것부터 터득하였다는 것이 한편 기특하면서도, 마음한구석을 짠하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