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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돈의교육

학습부진아 지도해 본 나, 학교만 탓할 수 없는 이유


요즘 초등생 한반 인원이 30~33명 정도를 이루는데, 이중 2,3명의 아이가 학습부진아, 혹은 학습지진아가 있는 실정이라고 한다. 학기마다 학습진단평가(기초학력을 평가하는 쉬운 시험이다) 결과를 토대로 기본점수에 못미치는 아이를 따로 모아 방학때 지도하고 있지만 효과는 별로 없고, 선생님도 아이도 모두 힘들어 하는 상황임을 예상할 수 있는 것은 나의 경험에서다. 그리고 학업성적이 좋지않다고 해서 학습지진아, 혹은 학습부진아라고 하는 것은 아니다. 반에서 골찌하던 아이가 학습에 열정을 보이며 일취월장하는 경우가 있기에 오해하면 안된다.
그리고 학교나 선생님에게 학습부진아에 대한 대책이나 노력이 없다고 나무라서도 안됨을 강조하고 싶다.

초등생 공부방샘으로 활동한지도 10년 중반을 넘기노라니, 나에게도 이런 아이를 둔 엄마에게서 조심스레 문의가 들어왔고, 애절한 엄마의 부탁을 거절할 수가 없어서 받아들였는데... 상상밖의 경험은 눈물겨웠고, 아이를 지도함에 있어서 느끼는 고충보다는 나 자신과의 갈등이 더 힘들었음을 고백한다.
교육전문가들이 내놓은 지도방법을 적용해보았지만 통하지 않아, 나는 매일 고민해야만했고 나의 지도에 문제가 있나? 반성하며 괴로워했다. 그리고 그들이 내놓은 이론적인 방법은 그저 이론적일 뿐, 아이의 특성이 달라 실제로는 도움이 안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칭찬과 격려를 보내며 아무리 재롱을 떨어도, 아이는 변하지 않았다.
힘들어 하는 나에게 아이엄마는 대충하라고 한다. 대충? 대충이 어느 정도인지 나는 알지 못한다. 다만 위로가 되었던 것은, 아이엄마가 나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 애쓴 점과, 아이의 아주 느린 변화에도 감사한 점이다.

일반적으로 학교에서는 이런 아이들이, 관심갖지 않는 가정환경과 경제적인 여건이 미치지 못하여 공부에 소홀한 것으로 여기고는, 학부모를 불러 상담을 하나 보다. 그리고 아이에게 더 많은 관심을 쏟아, 지도를 하면 나아지는 것으로 여기나 본데... 아이마다, 환경마다... 다르기 때문에 똑같이 적용할 수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나를 시험에 들게 한 아이는, 부모님의 관심과 사랑을 충분히 받는 아이로 2학년 2학기부터 학습에서의 뒤처짐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고 한다. 심각하게 받아들인 엄마가 직접 지도도 해보았고 과외 선생님을 불러 1:1학습지도도 받았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전이 없어 걱정이 되었던 엄마는, 병원을 찾았고 여러가지 검사를 거친 후 진단결과는, 학습을 받아들이는 속도가 보통의 아이에 비해 느리다는 것이다. 꾸준히 치료를 받아도 학습적으로는 별 진전이 없어 엄마도 상심해 있었다.

3학년 2학기때 아이를 만났다. 공부를 하기 전까지는 아이에게서 별다른 이상을 느낄 수 없었는데, 공부를 가르쳐보자 다른 점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ㅣ. 집중이 안된다.
공부 잘하고 못하고의 결정이 집중력이라고 한다면, 이 아이의 집중은 3초? 정도로 매우 짧다. 눈은 책을 보고 있다. 아예 소리내어 읽혔다. 하지만 3초가 지나면 아이의 머리속은 전혀 다른 생각이 지배하고 있음이 느껴진다. 아이와 눈을 마주치고 내가 설명을 시작하는데도 아이의 눈은 정말 눈깜짝할 사이에 다른 곳을 향해있다.
ㅣ. 기억을 못한다.
느리게, 천천히, 똑같은 것을 몇차례 반복, 설명하면서 이해를 시킨다. 아이가 다른 생각을 못하도록 하기 위해 아이의 생각을 묻는다. 아이가 답한다. 이 일도 몇차례 반복한다. 어차피 공부도 반복함으로 기억하는 것이니까. 아이가 이해한 것을 확인한 후 다른 것을 가르친다. 그리고 시간이 좀 지나 먼저 가르쳤던 것을 상기시키기 위해 되물어보면 거짓말처럼 하나도 기억하지 못함에 내가 놀란다.
ㅣ. 표현이 서툴다.
평상시에 말은 참 잘한다. 친구랑 놀때도, 자신의 요구사항을 말하거나... 이런 때는 문제가 없는데, 학습적인 면에서의 표현은 아주 서툴다. 아니 서툴다기보다는 아예 표현을 하지 않는다고 보면 될 것 같다. 딴 생각을 못하게 하려고 가르치고 묻는 방식으로 학습을 유도하지만 참 어눌하다. 때에 따라서는 내가 아이한테 속고 있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ㅣ. 속도가 느리다.
친구랑 놀고, 말하고, 음식을 먹고... 이런 속도는 보통이거나 빠르다. 하지만 학습과 연관된 말이나 행동은 속도가 굉장히 느리다. 자신이 없어서 그런 것 같아 금방 가르치고 이해시킨 내용을 물어봐도 역시 느리다. 생각을 해내려 애쓰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건 착각이다.
ㅣ. 성격이 급하다.
학습에 자신감이 없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기가 죽은 것도 아니다. 공부에 관한 생각이나 행동이 느림에도 불구하고 성격이 급해 아는 것도 틀리는 경우가 많았다.

저학년임에도 불구하고 학습부진아 혹은 학습지진아가 되는 경우, 학년이 올라갈수록 극복하기는 매우 힘들다. 이런 경우 공부로 인한 스트레스를 주기보다는 아이가 좋아하는 것을 빨리 찾아 주는게 훨씬 유익하다고 생각된다.(단, 기적처럼 늦트이는 아이도 있을 수 있기에 나의 경험담도 절대적일 수는 없다.)
가르치는 사람도 배우는 아이도 다 힘든 시간이었다. 더구나 학교선생님은 30여명의 아이속에 두어명의 아이를 돌보는 일이 쉽지 않다. 내 경우 1:1임에도 불구하고 집중시키는 것이 제일 큰 과제였을 뿐만 아니라, 속된 말로 돈을 받고 가르치는 입장이었는데도 내가 먼저 지쳐 병이 났으니 노력하면 향상시킬 수 있다는 이론에 의문이 든다.

칭찬과 격려을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는 칭찬하면 칭찬한 것에 기분좋아 또 놓치는 모습을 보였고, 긴장하기를 바라고 눈을 마주치면 아이는 슬그머니 눈을 피했다. 그렇게 힘든 시간을 거듭하다 내가 손을 들었다.
아이는 아주 더디게 좋은 반응을 보임으로 엄마에게 희망을 주기도 했다. 많은 시간이 흐른 뒤, 불현듯 생각해 내어 한마디씩 하는 말로 보람을 줬고, 엄마를 기쁘게 했던 것이다.
 "선생님, OO이가 OOO도 알았어요. 공부방선생님한테 배웠다면서 아는척을 했어요."
이왕이면 알아야 할 시기에 알아서 좀 나은 성적으로 보답해줬으면 좋았을 것을... 그야말로 그 아이는 아주 느린 시간을 살고 있었던 것이다.

공부!
누구나 노력하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까?
실망스럽겠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지 않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세월을 넘기고도, 더하기 여러해동안 꽤 많은 아이들을 가까이서 지켜본 결과, 노력도 중요하지만 유전적인 요소가 분명히 작용함을 확실하게 느낀다. 아이의 학습도우미로 공부방을 하고 있는 내가 이런 결론부터 내버리면 희망이 없다고 나무랄지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아이마다 특성이 있기에 아무리 똑같은 선생님한테 똑같은 내용을 배우고 똑같이 노력했다하더라도 똑같은 결과를 낳지 않는다. 그리고 공부로 성공한다는 게 그리 쉽지만은 않기에 우리아이의 적성과 특기를 빨리 찾도록 이끌어 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1%의 영감과 99%노력의 결과라고 한 에디슨은 타고난 재능이 분명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