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을 마시는 횟수라곤 일년에 두세번정도였던 우리부부에게 복병(심한가^^)이 나타난 시기가 작년이었나 봅니다.
다른회사에서 관리직으로 일했던 후배가 명퇴후, 남편과 같은 일을 하게 되면서 우리부부의 술자리는 일년이 아닌 한달에 두세번으로 급속도로 늘어났고, 감당하기 힘들어짐을 제몸과 머리가 느끼면서 여러차례 거절하기도 했지만 늘 변명이거나 농담처럼 도루묵이 되었습니다.
남편후배들이 가정적이라서 그런지 아내동반을 원하고, 이에 남편은 저의 불만을 감수하면서도 동행을 원하니 어쩔수 없이 동석하게 되는 제 표정이 좋을리 없었겠지요.
남편후배가 저를 보며
"형수님 이왕에 나오실거면 기분좋게 나오십시요."
술잔을 앞에 놓고
"어차피 마시게 되는 술, 빼지마시고 첨부터 기분좋게 드십시요."
다 맞는 말입니다. 그리고 덧붙이기를
"나오시면 얘기도 잘하고 기분좋아 보이시는데 형님 힘들게 왜 그리 튕기세요."
"처음엔 술을 마시지 않으려고 빼다가 한두잔 마시면 잘 마시니까 원래 빼기를 잘하는 성격인가 봅니다."
그리고
"재밌고 편한 형수"
저를 그동안 보면서 이렇게 생각했다니 감사합니다만 오해입니다.
우리부부는 술을 즐기지 않습니다. 일년중 연말연시에는 예의상 마시던 정도였기에 아무도 우리를 술자리에 불러주지 않아도 서운함을 느끼지 않을뿐더러, 우리가 술자리로 누군가를 불러내는 일은 거의 없는데, 남편후배입장에서는 이해하기 힘든 점이며 서운한 점일 것입니다. 우리부부는 음료수, 아니 물잔을 앞에 놓고도 술자리에서 나누는 대화처럼 나눌수 있는 부부입니다.
월요일, 번개팅이 잡혔다면서 남편은 퇴근하자마자 외출준비하라고 독촉합니다. 이유가 참 황당합니다.
지난 주말에 후배에게서 한잔하자고 제의가 들어왔는데 제가 뮤지컬공연을 보고 바로 귀가하지 않고 제 친구랑 저녁을 먹고... 제가 빠지는 바람에 취소된 것을 다시 부활시킨 약속으로 모든 것을 제탓으로 돌리는 것입니다. 남편후배가 한잔하자고 하면 남편이 알아서 하면 될 것을... 부부동반이었나 봅니다. 부부가 함께 모인다는 게 가정적이며 모범적임에는 틀림이 없는데 저에게 가끔 부담스런 자리로 느껴지는 이유
첫째, 사양해도 술을 자꾸 권합니다.- 제가 사양하다가 지쳐서 이왕에 한잔 마신거 그래 먹자싶어서 포기하고 술을 마시게 됩니다. 몸이 회복되기까지 알게 모르게 시일이 걸리니 지칠 수 밖에 없습니다.
둘째, 번개팅입니다.- 갑자기 약속이 잡힙니다. 저녁시간이 한가한 것 같으면서도 때에 따라서는 한가하지 않는 사생활이 있습니다.
셋째, 밤술로 뱃살이 늘어납니다.- 디스크로 평소에 하던 운동도 못하는데 술자리와 비례해서 늘어나는 뱃살이 저를 슬프게 합니다.
넷째, 모임자리에서 제가 너무 떠들고 있는 자신이 싫습니다.- 그러면 조신하게 가만히 있으면 되지 않느냐고 남편은 말하지만 울남편도 말이 없는데 저까지 말이 없으면 그림이 우습지 않습니까. 한심하다싶을 정도로 제가 말을 많이 하니 차라리 만남 횟수를 줄이고 싶습니다.
다섯째, 남편에 대한 존경심이 사라집니다.- 울남편 매사에 긍정적 사고를 지닌 성품으로 점잖은 남자입니다. 제가 이런 점을 존경하고 사랑하는데... 남정네들 대화에서 실망스런 부분이 있습니다.
여섯째, 남편이 아내를 비교합니다.- 후배아내는 남편의 부부동반에 불만없이 흔쾌히 동석하는데 저만 별스럽게 불평을 한다고...
일곱째, 아무런 도움이 못되지만 고3 딸을 둔 엄마입니다.- 원래는 이게 첫째가 되어야하는 이유로 군에 있는 우리아들이 상상도 할수 없도록 우리부부가 변했습니다.
친목도모! 대찬성입니다.
하지만 잦은 술자리에 저는 아직도 익숙하지가 않습니다. 적응이 빠를 것 같다고 주변에서 저를 평가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너무 잦은 만남은 부담스럽다고 그간의 느낀점을 진지하게 전했더니 갑자기 분위기가 싸아~~해지더니, 앞으로는 저만 빼고 만남을 가지겠노라고 합니다.
찬성했습니다.
그랬더니 덧붙이기를
서운해하지 마라고 합니다.
이 또한 괜찮습니다.
좋아서 보고파서 생각날 때 만나고 싶으면 만날 수 있는 평범한 일상에 선을 그으려고 한다면서 제게 충고했지만 어쩔수 없습니다.
선을 긋는다~~~~
졸지에 제가 까칠녀가 되었습니다.
제 생각을 다 전달하고 나니 핸드폰에 문자가 들어옵니다.
띠동갑 사회친구의 번개모임이 있다는 문자... 이건 강제성이 없는 자유입니다. 동석하고 싶으면 하면 되고 안하고 싶으면 안하면 됩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제 글의 소재가 된 모임은 정기적인 모임이 아니라 번개팅에도 100% 참석을 원하니 요것이 문제라고 지적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참 좋습니다. 그리고 모임도 맘에 듭니다. 다만 번개팅에 대한 제생각을 전달했는데 오해하는 남편후배의 반박을 들으며 그 자리에서 저만 이상한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우리부부는 약간의 말다툼이 있었습니다. 분명한 내 뜻을 진지하게 밝힐 것이라고 남편의 동의를 얻고서 전달한 것이었는데, 울남편 제가 분위기를 싸~~ 하게 만들었다고 언짢아했습니다. 남편이 이렇게 변하고 있음을 느끼며 어이가 없었습니다.
공식적이며 정기적인 모임도, 번개팅도, 100%출석율을 원하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다는 저의 생각을 동조해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기에 보다 더 확실한 까칠녀가 되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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