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후반의 나이로 베트남 여인을 아내로 맞아 늦장가를 간 어느분의 이야기입니다.
아빠와 딸같은 나이차와 말이 통하지 않는 의사소통의 불편함, 그리고 각기 다른 나라에서 살았기에 다를 수 밖에 없는 문화의 차이로 말미암아 답답했을 모습이 먼저 그려졌습니다.
뉴스를 통해 보면, 결혼상대를 구하지 못한 한국의 농촌남성들이 외국에서 돈주고 사오는 듯한(?) 인상을 풍기며 신부로 맞아 결혼하고서는, 문화적 차이 혹은 의사소통의 곤란을 겪으며 생긴 오해로 말미암아 불행하게도 파탄에 이르는 경우를 접했기에 걱정하는 선입견이 있는데...
제가 들은 가정의 이야기는 좀 달랐습니다.
20대초반의 베트남아내는 한국의 농촌으로 시집을 왔으나, 집안일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답니다. 농사일로 일손이 바쁜 남편을 도울만도 했건만, 이웃집에 놀러가면 식사때가 되어서야 나타났답니다.
어떤 때에는 남편친구가 친구어머니께 안부차 방문하였고, 집에 온 아들의 친구를 대접하고자 이웃집에 간 며느리를 데리고 오려고 찾아 간 시어머니를 따라 오지 않아, 아들친구를 위해 다과상을 내놓으시는 분은 친구의 아내가 아니라 어머니셨답니다. 이후 그 친구는 노모의 대접을 부담스럽게 여기고 친구집 방문을 자제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나중에 알고보니 이웃에는 베트남아내와 같은 처지의 또 다른 베트남여인이 살고 있었다고 합니다.
말도 잘 통하고 뜻도 잘 통하니 어쩌면 집보다도 더 편했을 것으로 이해가 되면서도, 농사일로 바쁜 남편의 일을 전혀 돕지 않은 젊은 아내가 얄밉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타국에서 어렵사리 짝을 이루게 된 과정을 생각하며 넓은 마음으로 이해하려고 했던 남편이었답니다.
일이란게 그렇잖아요. 더구나 농촌의 일이라면 더.
일손은 늘 필요로 하고... 돕는 차원에서 거들기 시작하면 서서히 의지하게 되고...
먼저 결혼하여 터를 잡은 선배베트남 여인이 나중에 결혼하여 같은 동네로 들어온 이 여인에게 처음부터 돕기 시작하면 일꾼이 된다면서 돕지 말라고 조언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가끔 화도 났지만, 의사소통이 자유롭지 못함으로 인해 가정에 불화가 생길까봐서 체념을 했답니다. 그러면서 남편은 자신의 짝이 되어준 아내를 고맙게 생각하고, 시어머니도 말과 뜻이 잘 통하지 않는 외국며느리에 대해 별로 기대하지 않았던 마음이 도움이 되었다고 합니다.
일반가정에서도 비슷한 현상을 경험하지요^^
처음에는 바쁜 일손을 도와주면 고마워하다가 나중에 습관이 되면 왜 안도와주나? 하고 상대방에게 야속한 생각을 갖게 되는 심리... 베트남에서 먼저 시집 온 여인이 사람의 이런 심리를 잘 터득하여 나름대로 지혜롭게 살았음을 후배 베트남아내에게 전수한 것 같다는 추측을 해보기도 했답니다.^^
시간이 좀 지나 아내로써 인정받음을 느끼고서야 스스로 일을 도우기 시작했다는 지혜로운 베트남아내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렇게 되기까지, 남편뿐만 아니라 아내도 힘들었을 것임을 짐작하게 됩니다.
한국남편이나, 베트남에서 낯선 땅으로 시집 온 여인이나, 익숙하지 않기에 서로 견제하며 눈치보는 것은 같은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더구나 말이 통하지 않으니 의사소통에도 문제가 발생했을 테고 말입니다.
외국신부를 맞이하여 불화를 일으켜 나이많은 한국남편이 젊은 베트남아내를 무시하면서 폭력을 휘두르는 기사도 가끔 보면서 안타까움을 금치 못하는데 비해, 무조건적으로 복종하지 않고 나름대로 지혜로운 아내와 아내의 자리를 확보하고자 노력한 베트남 아내의 당당한 용기가 위태롭게 여겨지면서도 칭찬을 보태고 싶었습니다.
물론, 남편과 시어머니의 배려가 돋보이는 가정이기에 가능했겠지요.^^
남편을 믿고(심성이 나쁜 사람이었더라면 불행의 씨앗이 되었을테지만) 집안일 외에는 절대로 안하겠다고 당당하게 말하고 실천한 용기(?)있는 여인이 남달라 보였습니다.
신혼때 이런 모습을 보였던 이 가정에 태어난 아이가 이번에 첫돐을 맞이하였답니다. 결혼한지는 몇년이 되었구요. 남편의 나이로 봐서는 아빠가 아니라 손자같지만 아빠는 늦둥이 아들에 무척 감격하고 자랑스러워하며, 손자를 봐서 할아버지로 불리는 친구들을 초대하였다고 합니다.^^
몇년이 지난 요즘, 베트남아내는 한국에 대한 이해와 남편과의 의사소통이 원할해져 자신의 뜻만 내세우지는 않는다고 합니다. 함께 일하고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으로 평화로운 가정을 일구며 살고 있답니다.
강압적이거나 폭력적이지 않고 서로 이해하고 보듬으면 국적이나 나이와는 아무 상관없이 평화로운 가정이 됨은 서로의 노력인 것입니다. 다문화가정의 행복한 모습이 더 많이 알려졌으면 좋겠습니다.
아빠와 딸같은 나이차와 말이 통하지 않는 의사소통의 불편함, 그리고 각기 다른 나라에서 살았기에 다를 수 밖에 없는 문화의 차이로 말미암아 답답했을 모습이 먼저 그려졌습니다.
뉴스를 통해 보면, 결혼상대를 구하지 못한 한국의 농촌남성들이 외국에서 돈주고 사오는 듯한(?) 인상을 풍기며 신부로 맞아 결혼하고서는, 문화적 차이 혹은 의사소통의 곤란을 겪으며 생긴 오해로 말미암아 불행하게도 파탄에 이르는 경우를 접했기에 걱정하는 선입견이 있는데...
제가 들은 가정의 이야기는 좀 달랐습니다.
20대초반의 베트남아내는 한국의 농촌으로 시집을 왔으나, 집안일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답니다. 농사일로 일손이 바쁜 남편을 도울만도 했건만, 이웃집에 놀러가면 식사때가 되어서야 나타났답니다.
어떤 때에는 남편친구가 친구어머니께 안부차 방문하였고, 집에 온 아들의 친구를 대접하고자 이웃집에 간 며느리를 데리고 오려고 찾아 간 시어머니를 따라 오지 않아, 아들친구를 위해 다과상을 내놓으시는 분은 친구의 아내가 아니라 어머니셨답니다. 이후 그 친구는 노모의 대접을 부담스럽게 여기고 친구집 방문을 자제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나중에 알고보니 이웃에는 베트남아내와 같은 처지의 또 다른 베트남여인이 살고 있었다고 합니다.
말도 잘 통하고 뜻도 잘 통하니 어쩌면 집보다도 더 편했을 것으로 이해가 되면서도, 농사일로 바쁜 남편의 일을 전혀 돕지 않은 젊은 아내가 얄밉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타국에서 어렵사리 짝을 이루게 된 과정을 생각하며 넓은 마음으로 이해하려고 했던 남편이었답니다.
일이란게 그렇잖아요. 더구나 농촌의 일이라면 더.
일손은 늘 필요로 하고... 돕는 차원에서 거들기 시작하면 서서히 의지하게 되고...
먼저 결혼하여 터를 잡은 선배베트남 여인이 나중에 결혼하여 같은 동네로 들어온 이 여인에게 처음부터 돕기 시작하면 일꾼이 된다면서 돕지 말라고 조언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가끔 화도 났지만, 의사소통이 자유롭지 못함으로 인해 가정에 불화가 생길까봐서 체념을 했답니다. 그러면서 남편은 자신의 짝이 되어준 아내를 고맙게 생각하고, 시어머니도 말과 뜻이 잘 통하지 않는 외국며느리에 대해 별로 기대하지 않았던 마음이 도움이 되었다고 합니다.
일반가정에서도 비슷한 현상을 경험하지요^^
처음에는 바쁜 일손을 도와주면 고마워하다가 나중에 습관이 되면 왜 안도와주나? 하고 상대방에게 야속한 생각을 갖게 되는 심리... 베트남에서 먼저 시집 온 여인이 사람의 이런 심리를 잘 터득하여 나름대로 지혜롭게 살았음을 후배 베트남아내에게 전수한 것 같다는 추측을 해보기도 했답니다.^^
시간이 좀 지나 아내로써 인정받음을 느끼고서야 스스로 일을 도우기 시작했다는 지혜로운 베트남아내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렇게 되기까지, 남편뿐만 아니라 아내도 힘들었을 것임을 짐작하게 됩니다.
한국남편이나, 베트남에서 낯선 땅으로 시집 온 여인이나, 익숙하지 않기에 서로 견제하며 눈치보는 것은 같은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더구나 말이 통하지 않으니 의사소통에도 문제가 발생했을 테고 말입니다.
외국신부를 맞이하여 불화를 일으켜 나이많은 한국남편이 젊은 베트남아내를 무시하면서 폭력을 휘두르는 기사도 가끔 보면서 안타까움을 금치 못하는데 비해, 무조건적으로 복종하지 않고 나름대로 지혜로운 아내와 아내의 자리를 확보하고자 노력한 베트남 아내의 당당한 용기가 위태롭게 여겨지면서도 칭찬을 보태고 싶었습니다.
물론, 남편과 시어머니의 배려가 돋보이는 가정이기에 가능했겠지요.^^
남편을 믿고(심성이 나쁜 사람이었더라면 불행의 씨앗이 되었을테지만) 집안일 외에는 절대로 안하겠다고 당당하게 말하고 실천한 용기(?)있는 여인이 남달라 보였습니다.
신혼때 이런 모습을 보였던 이 가정에 태어난 아이가 이번에 첫돐을 맞이하였답니다. 결혼한지는 몇년이 되었구요. 남편의 나이로 봐서는 아빠가 아니라 손자같지만 아빠는 늦둥이 아들에 무척 감격하고 자랑스러워하며, 손자를 봐서 할아버지로 불리는 친구들을 초대하였다고 합니다.^^
몇년이 지난 요즘, 베트남아내는 한국에 대한 이해와 남편과의 의사소통이 원할해져 자신의 뜻만 내세우지는 않는다고 합니다. 함께 일하고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으로 평화로운 가정을 일구며 살고 있답니다.
강압적이거나 폭력적이지 않고 서로 이해하고 보듬으면 국적이나 나이와는 아무 상관없이 평화로운 가정이 됨은 서로의 노력인 것입니다. 다문화가정의 행복한 모습이 더 많이 알려졌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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