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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돈의교육

선산벌초에 무관심했던 사연은 이해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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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 세대가 안계신 저희 시댁집안의 어르신은, 나이 지긋하신 아주버님으로 이루어져 몇년전까지만 해도 집안의 모임은 일년에 한번, 결혼한 순서대로 모임의 자리를 마련하는 책임으로 추석날에 이루어졌습니다.
돌아가신 할아버지 형제분 자손들인지라 육촌(울남편기준)까지 해당이 되었던 모임으로, 아주버님 세대 자녀들이 결혼하면서 참석인원은 더 늘어났고, 또한 세대차이도 더 벌어졌지만 이 모임은 결혼과 동시에 자동으로 자격이 주어지긴 했어도, 생각은 어르신들의 주장이 더 강했던 모임이었기에 새로 영입되는 젊은 회원은 그저 따를 뿐이었습니다.
제가 남편을 만나 결혼한지가 20여년이 흘렀고, 우리 결혼당시에 이미 진행중인 모임이었으니, 꽤 오랜 시간을 이끌어 온 세월입니다. 그러다가 점차 문제가 생겼습니다.

일년에 단 한번 추석날에 갖는 모임임에도 불구하고, 타지에 사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불참자가 생겼고, 이어서 형편이 어렵다는 핑계로 일년에 한번 내는 적은 금액의 회비조차도 내지않는 사람도 생겨나더니, 급기야는 부부간의 문제로 가정불화를 겪던 부부는 아예 탈퇴를 선언하게 되었고, 또한 연세가 드신 아주버님 내외분 중에 홀로 되시는 분도 생겨나면서 모임의 빛이 안타깝게도 퇴색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하여 비슷한 세대끼리 따로 모임을 가져볼 의견도 있긴 했으나, 젊은 세대일수록 친인척이란 개념은 희미하기만 해서 잘 화합되지 않았고, 그러다가 모임해체설이 나돌더니 결국에는 목돈된 회비는 그냥 둔 채로 해체하기에 이르러 공식적인 모임은 3년전에 종지부를 찍고 말았습니다.
모임의 성격은,
첫째. 각자의 생활터전이 다른 관계로 자주 볼수는 없더라도, 일년에 단한번만이라도 서로 얼굴을 익히며 친인척간의 우애를 다지자.
둘째. 회비로는 선산의 묘소를 벌초할 때에 소모되는 경비를 정한 액수에 맞춰서 사용하는 것과, 벌초때에 각 집안에서 적어도 한명이상은 동참하여 협력하자.
이런 저런 사정으로 비록 대가족 모임의 취지였던 첫째는 종지부를 찍었다손치더라도, 목돈으로 남은 회비를 이용하여 벌초하는 일에는 소홀함이 없도록 하자는 의견은 그대로 존속하기로 했습니다.

같은 세대이긴 하나 우리는 젊은축에 끼니까 의견을 말할 군번이 못되고, 연세 지긋하신 아주버님 세대에서 볼때에 세 집안에서 선산의 벌초를 함께 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한 집안에서 한명도 동참하지 않는 바람에 두분의 아주버님께서 세 집안의 묘소를 다 벌초해야하는 부담이 생겼습니다. 한 집안에서 책임져야 할 묘소가 4~5위가 되다보니, 두분이서 하시기엔 12위가 넘는 묘소 벌초가 힘이 들수 밖에 없습니다.
금년에 울큰댁의 큰조카가 아주버님을 따라 동참하여 그나마 일이 조금 수월했다고 합니다. 울큰댁을 기준으로 우리 집안에서는 사촌쪽으로 아주버님 두분과 삼촌과 울남편 그리고 장성한 조카가 있습니다만, 사촌아주버님이 큰집으로 장손임에도 불구하고 무관심이고, 직장에서 근무하는 관계로 일요일이 휴무가 아닌 삼촌은 동참할수가 없고, 큰조카 역시 타지에 사는 관계로 좀처럼 시간을 낼수가 없었는데 금년에 모처럼 동참하게 되었으며, 울남편은 우리가 사는 고장에 계신 아버님 산소를 책임지므로 선산의 벌초까지는 무리라는 점을 아주버님께서 이해해주셨습니다. 그리하여 울집안에서는 큰댁의 아주버님께서 책임지고 꼭 참석을 하십니다.

육촌쪽에서 아무도 동참하지 않는 관계로, 수고를 더 하고 계신 두 아주버님의 노고를 알게 된 울 큰조카가 노령의 아버지(아주버님)를 걱정하고, 또한 동참하지 않는 집안의 무관심에 서운함을 느끼고, 불만을 털어놓게 되었던 이번 추석입니다.
우리 큰댁의 조카 생각에, 몇년째 무관심하는 집안으로부터 두분 어르신께서 무시당하는 것 같은 언짢은 기분이 들었나 봅니다. 그리하여 집안의 어르신이신 모든 아주버님께서 다 동참하시어 선산 벌초에 관심을 가져줄 것을 제안하면서 간절한 청을 전화로 일일이 알리며, 의논을 할수 있도록 우리큰댁으로 왕림해주실 것을 호소하기에 이르렀습니다. 하지만 역시 무관심했던 육촌쪽의 그리고 사촌쪽의 아주버님께서는 무관심으로 동참하지 않으셨고...
모여계신 분들의 의견이 오가던 중... 집안의 제일 어른이신 육촌집안의 동서형님께서 참석하시어 그간의 집안사정을 들려주셨습니다.
사연인즉, 육촌집안의 아버지 세대 어르신이 남겨두신 재산을 둘째아주버님께서 형제간의 의논도 없이 홀로 다 챙기는 바람에 형제간에 다툼이 일어났답니다. 법으로 하기는 창피하기도 해서 다들 포기는 했지만,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되면서 선산의 벌초는 재산을 다 가로채신 둘째 아주버님으로 미루게 된 과정을 들려주시면서 한숨을 내쉬셨습니다.
태어난 차례로 보면 큰 아주버님께서 돌아가셨기에, 유교적 관례상 장손인 육촌 형님의 아들이 맡는 게 순서이긴 하지만, 재산을 홀로 가로채신 둘째 작은 아버지를 원망하며 참석하고 싶은 마음이 없어졌다는 심정과 함께, 또한 셋째, 넷째 작은 아버지께서 계시는데, 굳이 나서고 싶지 않다는 생각도 어머니를 통해 밝혔다는 것입니다.
서로 미루다 보니 육촌집안에서는 자신들이 맡아야 할 묘소를 벌초하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모사에도 참석하지 않게 되면서 수고하고 있는 분에게 감사의 마음이나 미안한 마음마저도 전하지 않고 무관심으로 일관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회비로 경비를 충당한다고는 하나, 동참하지 않게 된 사연은 집안의 사정이기에 함께 하기로 했던 벌초에 관한 책임은 서로 감당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표시했습니다. 그리고 각자의 책임을 더 분명하게 하기 위해서 그간에 모아두었던 목돈을 각기 나눔으로, 성심성의껏 알아서 벌초하고 모사를 지내기로 결론을 내렸습니다.
모여있던 사람들은 다들 서운한 마음이었고, 제일 서운하신 것처럼 뜻을 밝히신 분은 육촌 형님으로, 이왕에 벌초하시는 두분 아주버님께 자신의 책임구역도 또 다시 다 해주기를 바라는 뜻을 비추셔서... 그분의 이기적인 생각에 어이가 없었습니다. 우리 아주버님보다 훨씬 젊으신 아주버님들이 더 많은 형님집안이었기에 그 제안에 놀라지 않을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결국은 형제간의 재산다툼으로 말미암아 자신들의 책임회피는 물론, 무관심으로 일관했던 일로 말미암아 끈끈한 정처럼 느껴졌던 회비조차 산산조각나는 일을 발생시키게 되었던 것입니다.

회비가 산산조각 났다고 해서 우리 아주버님께서 벌초를 외면하실 분이 아닙니다. 자비를 털어서 맡은 묘소뿐만 아니라, 재산다툼으로 말미암아 다들 무관심하고 있는 육촌댁의 벌초도 평년처럼 당연히 하실 분입니다. 다만 우리 큰조카 생각에는, 회비가 아닌 자비로 행하시는 울아주버님의 정성에 감사함이나 미안함을 가지고 관심을 가져주기를 바라는 마음을 기대하는 것입니다.

관심...
전화 한통의 관심이라도 보여주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울조카가 나타냈고, 형제간의 갈등을 겪으며 다함께 힘을 합치자고 했던 일조차 서로 미루는 집안에 조심스럽지만 따끔한 충고를 하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아랫세대로 내려갈수록 선산에 묻힌 조상님의 묘소 벌초가 부담으로 느껴지지만, 아직까지는 정성껏 하고자 하는 마음이 더 많음을 헤아려 본 시간이었습니다.